재즈 지평의 문을 연, 김오키

김오키 [Fuckingmadness] (2017)

by Melon

"미쳤다" 같은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다. 감탄사나 마찬가지인 자극적인 언어로 다른 표현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현상에 반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겠나. 어느덧 40대 중반, 내가 꼰대여서일 게다. 그럼에도, 이 뮤지션 앞에서는 "미쳤다"라는 수식을 끌어올 수밖에 없다. 과연, 앨범 제목 그대로 그는 "완전히 미쳤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사진ㅣ대림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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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앨범만 따져보자. 김오키는 2017년 [Fuckingmadness] 발표 이후 2020년 현재까지 무려 4장을 더 발표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의 음반 모두가 일관된 찬사를 획득했다는 거다. 하하. 가히 신들린 듯한 창작력이라고 확언할 수 있을 수준이다.


비단 나 같은 비평가만은 아니다. 각각의 음반 밑에 달린 댓글을 보라. 악플이라고는 1도 없다. 그를 아는 사람이건 처음 접한 사람이건 경이에 찬 언어만을 쭉 늘어놨다. 2000년대 이후 이런 뮤지션을 본 적 있나. 창작에 관한 한 그는 괴물 같은 재능을 지녔다. 그의 음악과 만난 모두가 이를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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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키는 첫 곡 'Fuc Ma Dreams'부터 듣는 이를 넉 다운으로 몰고 간다. 기실, 도입부에 들을 수 있는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은 일종의 미끼다. 이후 템포가 서서히 빨라지더니 랩이 등장하고, 곡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스스로를 몰고 간다. 아직 안 끝났다. 5분 즈음부터는 플루트 연주가 소리의 빈 공간을 찾아 비집고 들어오면서 숨을 고른다. 기-승-전-결 중 "승"에 해당되는 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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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은 이제부터다. 김오키의 색소폰이 터져 나오면서 드럼, 베이스, 플루트, 피아노 등 모든 악기가 듣는 이를 말 그대로 휘몰아친다. 강렬하고, 압도적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이 15분짜리 대서사시는 내가 쓴 글 아무리 읽어봤자 무소용이다. 일단 들어라. 듣고, 감탄하라. 아니, 감탄을 넘어선 감동이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걸작으로 평가받는 영화 한 편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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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만 빼어난 게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전통과 변주에 두루 능하다. 상수인 동시에 변수요, 클래식이자 모던이다. 김오키라는 뮤지션 자체가 재즈이면서도 재즈에서 비스듬하게 빗겨있고, 그의 커리어가 일반적인 재즈 연주자와는 길이 달랐던 이유 덕이 클 것이다. 'Fuc Ma Dreams' 외에 이후 그가 더 본격적으로 탐험하게 될 발라드 세계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Memory of Ugly Luv', 즉흥에 가까운 구성으로 25분을 조금의 지루함도 없이 채워낸 'Firebomb 10' 등을 쭉 감상하면서 나는 정말이지 이 앨범을 CD로 구매한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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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곡에서는 활화산 같은 분노를 토해내다가도 어떤 곡에서는 더없이 로맨틱한 선법을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조금의 고루함도 없이 '현대적'이라는 인상을 길어낸다. 글쎄. 이렇듯 '힙'한 재즈 뮤지션을 우리가 만났던 적이 있나 싶다.


힙합이 있는가 하면 재즈가 있고, 재즈의 즉흥으로 내달리는 와중에 록적인 타법으로 청각에 폭격을 가한다. 그 와중에 소리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핀다. 산소가 모자라 죽은 소리라고는 여기에 없다. 작은 소리가 거대한 스케일로 압도하는가 하면 큰 소리가 섬세한 톤으로 당신의 귀를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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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를 재즈라는 카테고리로 한정하는 게 맞나 싶다. 김오키 음악은 그냥 김오키유(流)다. 어쩌면 과장일 수 있겠지만 고백해본다. (정작 김오키 자신은 "이 세상에 정말 자유가 있나 싶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의 음악에서 "저 자신에게 한없이 가까워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진짜배기 자유" 비슷한 동경을 느낀다. 같은 이유로, 나는 그가 어느 순간 음악을 그만둘 거라 말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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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오키는 [스피릿 선발대]로 더욱 선명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면서 세상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세웠고, [포 마이 엔젤]에서는 아예 사랑 노래로 전체를 가득 채웠다. 비단 [Fuckingmadness]만이 아닌 이 2장의 음반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곡으로 꼽아야 한다면 전자에서는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후자에서는 서사무엘을 피처링한 '내 이야기는 허공으로 날아가 구름에 묻혔다'가 영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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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설명할 때 보통 "파격"이라는 단어를 자주 끌어다 쓴다. 통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파격은 단발성에 가깝다. 대신, 파격도 잦으면 어느 순간 보편이 된다. 내가 앨범 단위를 넘어서 김오키라는 세계 자체를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가장 큰 바탕이다.


김오키는 재즈의 변경에서 불쑥 등장해 굳게 닫혀 있던 새로운 지평의 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그리하여 결국 그에게 (특정 코스를 밟지 않았다며) 반감을 가졌던 자들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하긴, 구시대의 몰이해는 젊은 개혁자가 짊어져야 할 숙명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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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키 [Fuckingmadness] 앨범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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