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디스코그라피의 최고

신해철 [정글스토리 OST] (1996)

by Melon

6000명이다. [정글스토리]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관객수다. 저 6000명 안에 나도 있었다.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은 희미하지만 솔직히 재미없었다. 그저 윤도현이라는 원석을 발굴했다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긴, 1996년, 나는 겨우 대학생 1학년 따위였다. 영화에 대한 안목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다만 대학교 1학년생이 보기에 [정글스토리]는 너무 우울하고, 염세적이었다. 글쎄. 확언할 수는 없지만 재평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속 별점이 높아질 것 같지는 않다. 솔직한 나만의 독후감이다.


글 |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1.jpg


(추정이긴 하지만) 50만 장이 넘는다고 전해진다. [정글스토리] OST의 판매고다. 저 (대략) 50만 명 안에 나도 물론 있었다. 솔직히 말해볼까. 내가 [정글스토리]라는 영화를 극장까지 가서 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고(故) 신해철이 OST를 맡아서였다. 비슷하지만 다른 케이스도 있다. 적어도 내 주위에 전람회의 대학가요제 수상곡 '꿈속에서'를 듣고 팬이 되어 [Exhibition](1994)을 구입한 친구는 없었다. 다 '신해철이 프로듀스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꺼이 소중한 용돈을 투자했다. [정글스토리 ]와 [Exhibition], 두 앨범 모두 내 마음속, 아니 시간의 시험을 통과한 걸작임을 이제는 누구나 안다.


2.jpg


생생하게 떠오른다. 첫 곡 'Main Theme From Jungle Story - Part 1'를 듣자마자 잠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리고는 커버를 다시 봤다. 이전까지 이보다 쿨한 디자인의 커버를 적어도 한국 가요 쪽에서는 본 적 없었다. 고(故) 신해철은 '앨범 시대'의 수호자였다. 그가 영향받은 음악이 주로 '앨범 록/메탈'이었던 까닭이 클 것이다. 그는 전문 디자이너인 전상일씨와 협업해 앨범 커버 미학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가요 역사상 최초의 시도였다. 아, 커버 오른쪽 아래 새겨져 있는 '전상일 시각공작단 구륙년도 작업'이라는 폰트가 당시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나는 지금도 바이닐(LP)로 발매되었으면 하는 음반 1위로 [정글스토리]를 꼽는다.


3.jpg


'Main Theme From Jungle Story - Part 1'에 대해 설명해야 할 차례다. 김동률의 섬세하고, 따스한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Main Theme From Jungle Story - Part 2'도 좋지만 둘 중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선택은 역시 김세황의 것일 수밖에 없다. 전람회 2집 [Exhibition 2]에 썼던 찬사를 그대로 옮겨와 본다.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김세황의 기타 솔로는 그야말로 굉장하다. 그가 남긴 기타 솔로들 중 딱 3곡만 꼽아본다면 내 선택은 넥스트(N.EX.T)의 'Lazenca, Save Us', 전람회의 '유서', 그리고 'Main Theme From Jungle Story - Part 1'에서의 솔로다. 압도적이고, 격렬한 감정을 기타로 표현하려 할 때 김세황은 천하무적이 된다. 이 세 곡에서의 솔로가 바로 그렇다.


4.jpg


좋지 않은 곡이라고는 1도 없다. 고(故) 신해철의 창작력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에 나온 작품답게 (상투적 표현이지만) 전곡이 베스트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뭐랄까. 비단 재능만은 아니다.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일을 탐욕스럽게 해낸 사람만이 일궈낼 수 있을 어떤 경지가 이 앨범에는 담겨있다. 산울림의 원곡을 비틀어 재해석한 '내 마음은 황무지'를 비롯해 비장미 넘치는 파워 발라드 '절망에 관하여', '이중인격자'만큼이나 강성으로 내달리는 '백수가', 어느덧 시대를 상징하는 송가가 되어버린 '70년대에 바침' 등을 들어보라.


5.jpg


이 중에서도 '절망에 관하여'는 고(故) 신해철 스스로가 보컬 측면에서 최고로 꼽은 바 있는 곡이다. 과연, 바리톤으로 테너 영역까지 넘봤던 그의 보컬에 모두가 경탄을 보냈던 당대의 풍경을 기억한다. 비록 본인은 "많이 힘들었다"고 인터뷰에서 웃으며 얘기했지만.


6.jpg


돌이켜보면 가요사에 '사단'이라는 글자가 뒤에서 수식했던 뮤지션은 몇 없었다. 신중현 사단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 시기는 비록 짧았지만 고(故) 신해철 외에 김동률, 넥스트의 멤버들, 디자이너 전상일까지 아우르는 화려한 면면은 신해철 사단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정글스토리]는 고(故) 신해철의 인재 풀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를 증명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각 잡고 수록곡을 천천히 쭉 감상해보라. 적어도 '귀에 들리는 곡', 즉 멜로디의 완성도라는 측면으로 한하자면 신해철 디스코그라피를 통틀어 [정글스토리]가 단연 최고다. 이의 제기는 받지 않는다.




썸네일.jpg
신해철 [정글스토리 OST] 앨범 듣기>
keyword
Melon 음악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