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서정 (抒情)] (2005)
부활 앨범 중 완성도에 비해 가장 저평가된 앨범을 꼽자면 2장이다. 4집 [잡념에 관하여...]와 바로 이 음반 [서정(抒情)]. 전자는 부활 역사상 가장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어렵고, 난해했다. 그만큼 파고들 구석이 많아 듣기는 오히려 흥미로웠던 앨범으로 기억된다. [서정(抒情)]은 그와는 반대다. 거의 전곡에서 김태원이 창조한 멜로디가 서정이라는 간판을 달고 듣는 이를 끌어당긴다. 이렇게나 대중친화적인 음반이 그토록 주목 받지 못했다니, 돌이켜봐도 그저 기이할 뿐이다.
글 |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사랑할수록'이나 'Never Ending Story', 혹은 저 옛날 '희야' 같은 슈퍼 싱글은 없다. 대신 선율의 굴곡이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살아있다. 은은하다는 건 참 좋은 거다. 쉬이 질리지 않고, 계속 듣게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 [서정(抒情)]은 앞으로도 가장 자주 플레이 버튼을 누를 부활의 앨범이다. 부활 디스코그라피 중 장고 끝에 이 음반을 선정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첫 곡 '시간'부터 김태원의 기타 솔로가 박력 있는 연출과 더불어 튀어나온다. 뒤를 잇는 건 정동하의 보컬이다. 그의 목소리는 선 굵으면서도 담백하다. 생각해보라. 은은과 담백은 대개 한 쌍으로 작동한다. 유사한 뜻을 품고 있다 봐도 무리는 없다. 김태원의 기타에 그의 성대가 어울릴 수밖에 없는 바탕이다.최고의 곡을 꼽자면 아무래도 '추억이면(異面)' 혹은 '슬픔을 이기는 기도'다. 글쎄. 각자 의견은 다르겠지만 나는 '추억이면(異面)'이 '사랑할수록'이나 'Never Ending Story'에 비해 덜 매력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가히 록에 기반한 파워 발라드의 교과서 같은 곡이다. 정동하의 보컬은 저음에서는 안정적이고 고음에서는 인상적인 호소력을 내뿜는다.
연주와의 궁합은 말할 것도 없다. 첫 도입부에서 정동하의 보컬이 물러나는 지점에서 김태원의 기타가 등장하고, 김태원의 기타가 물러나면서 두 번째 도입부가 시작되는 구간이 그 중에서도 마음에 쏙 든다. 무엇보다 정동하의 보컬에는 하드 록 특유의 날카롭게 찌르는 톤이 없다. 고음에서도 톤을 두텁게 가져갈 줄 안다. 즉, 이런 특징이 부활 음악에서만큼은 십분 발휘될 수 있는 셈이다.
다시 한번 비교 평가 해볼까. 나는 '슬픔을 이기는 기도'가 'Lonely Night'에 비해 뒤질 것이 없다고 거의 확신한다. 뭐, 앞으로도 부활 명곡 리스트의 차지는 두 곡 중 후자일 게 분명하다. 이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슬픔을 이기는 기도'에는 좀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져야 마땅하다. 이 곡은 참으로 적당하다. 적당한 속도감, 적당한 멜로디, 적당한 비트 등, 모든 게 적당하다.
아니다. 자세하게 적을 필요가 있다. 그냥 적당한 게 아니라 정말이지 '정확하게 적당'하다. '정확하게 적당하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성취가 아니다. 김태원 정도 되어야 겨우 가능한 경지다. 과연, 세상에는 (아무리 재능이 탁월해도) 경험 없이는 잘 안 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곡이 이걸 증명한다.
이 외에 김태원의 기타 솔로로 'Gabriel's Oboe'를 만날 수 있는 '4.1.9 코끼리 탈출', 대중적인 멜로디뿐 아니라 2분 50초 이후의 세련된 변주 역시 돋보이는 '거미의 줄', 아날로그 감성을 극대화한 발라드 'Yellow' 등, 곡 전부가 서정이라는 타이틀 하에 하나로 뭉쳐있다. '회상 Ⅲ (In Eternity)'를 조PD와 함께 재작업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테마 응집력이 꽤나 단단하다. 철저히 발라드 작법에 기반한 사랑 노래 중심이다. 한데 그래서 더 부활'적'이라고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김태원도 이렇게 말했다. "부활을 관통했던 음악은 따지고 보면 서정 록이었다." 요컨대, 서정 록이야말로 부활 역사를 견인해온 확고한 열원이었던 셈이다.
걸리는 게 없지는 않다. 'Imagine'의 곡 해석이 그렇다. 특히 도입부와 "누군가"라고 노래하는 지점에서 신인 티가 드러난다. 지금의 정동하라면 훨씬 여유롭게 소화했을 것이다. 정동하 역시 한 인터뷰에서 "다시 부르고 싶은 곡"으로 'Imagine'을 꼽았던 바 있다.
부활이라는 밴드의 정체성을 뚜렷한 논점으로 압축해서 요약한 앨범, 그리하여 역사상 가장 부활답다고 말할 수 있는 앨범, 10집 [서정(抒情)]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10이라는 숫자가 유독 의미심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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