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가든 1집&2집 리마스터] (2014)
동해물, 아니 내 귀가 마르고 닳도록 플레이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식 표현을 빌려오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핥듯이." 이런 경우, 내 경험상 결론은 대개 다음처럼 맺어진다. "좋아하는 곡 선택 못 한다. 전곡이 베스트다." 나는 정반대다. 청취 횟수와 정비례해 선호도가 갈린다. 모든 수록곡이 훌륭한 건 맞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 손길이 더 가는 곡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사진ㅣ노이즈가든 공식 페이스북 @noizegardenofficial
세간에서는 1집을 더 높게 쳐준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어떤 명반 리스트를 봐도 예외 없이 데뷔작을 선정했다는 게 증거다. 하나, 나는 2집을 선호하는 터라 절충의 의미로 리마스터링 된 1, 2집 합본을 택했음을 밝힌다. 리마스터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부기하지 않는다. 이 코너 중 윤상의 명반 [이사(移徙)] 글 말미에 적혀있으니 궁금하다면 참고하시라.
기타 아르페지오에 더해 드럼과 베이스가 주문처럼 피어오른다. 이후 강렬한 기타 리프가 급습을 감행하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본격적인 출발을 개시한다. '나는'에 이어 '기다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두 곡은 반드시 한 덩이로 감상해야 한다. 뭐, 그렇게 들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노이즈가든은 듣는 이의 청각에 무지막지한 폭격을 가하다가도 유연하고 다이내믹한 그루브로 어루만질 줄 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로 질주의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우주꽃사슴'으로 영롱한 얼굴을 내비치고, '미련'에서는 그 영롱한 얼굴을 시멘트 바닥에 대고 갈아버린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못 지 않은 타격감을 느낄 수 있는 '유혹', 노이즈가든을 수식할 때 반드시 따라붙는 대표곡 '타협의비'가 갖는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다.
뜨겁고, 거칠면서도 철저하게 정제되어 있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와중에 사방을 두루 살핀다. 차가운 이성으로 용암처럼 분출하는 헤비메탈의 정서를 정확하게 통제한다. 군더더기 따위는 없다. 화려하게 비상하는 테크닉보다는 헤비메탈 본연의 무게감에 초점을 맞춘 곡이요, 앨범인 까닭이다. 행여 "정통은 아니다"며 시비를 가리자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맞다. 노이즈가든의 음악은 1990년대 헤비메탈에 영향받은 그런지 밴드, 예를 들어 이름에 영감을 준 사운드가든(Soundgarden)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데 그것과는 또 다르다. 차라리 그들의 음악은 앞서 언급한 레드 제플린이나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1990년대보다는 1970년대 클래식 록에 가깝다. 블랙 사바스처럼 (하프 혹은 다운 튜닝을 통해) 깊고, 어두운 정서를 표현했다는 점, 어떤 곡에서는 레드 제플린처럼 블루스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내비쳤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이런 정통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의미다.
기가 막힌 톤 메이킹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그런 얘기는 좀 지겹습니다. 제가 최소한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윤병주는 톤과 관련해서도 겸손을 취했지만 상찬을 하지 않고 넘어가긴 아무래도 어렵다. 모든 곡에서 그는 수시로 톤을 변화해가면서 곡에 역동성과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기타 영웅의 탄생이었다.
2집은 1집과는 달랐다. 깔끔하고, 선명했다. 일단 곡 길이부터가 이를 증명한다. 7분이 넘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더이상원하지않아'가 증명하듯 묵직한 돌직구만큼은 여전했다. 그러면서도 블루스로 흐느적거릴 줄 알았다. 블루스는 2집의 요체이자 윤병주의 미래를 시사하는 요소이기도했다. 이후 노이즈가든 활동에 회의를 느낀 그는 해체를 선언하고, 2000년대 초 로다운30을 결성한다.
글쎄. 이것 역시 각자 다르겠지만 2집에서는 '다시어둠이'를 자주 되풀이해 들었던 것 같다. 시종일관 지글거리는 연주와 공포 영화 사운드트랙을 연상케 하는 효과음, 간결하게 핵심만 찌르는 블루스 솔로 등, 모든 게 취향 저격이었다. 블랙 사바스의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가 블랙 사바스 음악을 구체화한 데는 다음 같은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포 영화를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음악에는 왜 없을까?" 토니 아이오미도 이 곡을 들으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5분 3초에 시작되는 변주는 그중에서도 최고다. 이 멋진 변주 들으려고 이 곡 듣는다. "둥둥다라랑당 둥둥다라랑당."
다만, 이게 정점은 아니라고 본다. 음반의 봉우리는 단연코 '향수 I'과 '향수 II'에 위치한다. 1집에 '타협의 비'가 있다면 2집에서는 이 두 곡이다. 이 연작에서 노이즈가든은 가볍고 날랜 팔색초 메탈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메탈의 정수를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영민한 편곡으로 다각화를 꾀했다. 느리고, 무거운데 단 1도 지루하지가 않다.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의 노래가 막을 내리고 기타 솔로가 시작되는 ''향수 II'의 2분 30초 지점은 1집과 2집을 통틀어 최고 압권을 형성한다. 뭐로 보나 '타협의비' 못 지 않다.
박건에 대해 한 줄도 적지 않아 여기에 쓴다. 그는 단어를 꾹꾹 누르듯이 발성한다. 절규할 때도, 멜로디를 타고 오르내릴 때도 가사집을 펼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그는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듯 노래하고, 고함친다. 다시 한번, 섬세함과 파워를 겸비했던 이 뛰어난 보컬리스트의 명복을 빈다.
여기, 헤비메탈의 본질을 건져 올린 걸작이 있다. 그것도 2장이나 말이다. 각각 1996년과 1999년 발표된 노이즈가든의 1집과 2집은 헤비메탈이라는 사각지대에서 피워 올린 위대한 봉화였다. 중갑차의 위압감으로 뚜벅뚜벅 행진하듯 등장한 노이즈가든은 단 2장의 음반으로 한국 록의 전설이 되었다. 정작 윤병주 본인은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며 스스로를 낮췄지만 이제는 이게 팩트임을 누구나 인정한다.
반드시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감상하기를 권한다. 노이즈가든처럼 (음반사 아닌) '아티스트의 주도 하에 오리지널 마스터로 리마스터링 한 경우'라면 이게 정답이다.
Noizegarden [1992-1999 Deluxe Remastered Edition] 앨범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