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오, 사랑](2005)
통쾌했던 기억부터 꺼내본다. 참가자가 누구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디션 프로에서 그(녀)가 노래를 했고,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다음 비슷한 감상평을 남겼다. "지금 이런 평이한 구성의 노래로 1시간, 2시간 공연을 할 수 있을까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심사위원이 반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저런 곡을 선호하는 팬들이 분명히 있어요. 그것도 생각보다 많이. 루시드폴 같은 가수가 그래요."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그렇다. 루시드폴의 노래는 유순하다. 튀는 지점도, 강렬한 절정도 없다. 곡의 제목처럼 '물이 되는 꿈'처럼 흘러간다. 그런데 계속 듣게 된다. 쉬이 질리지 않는다.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가 내 스피커에서 처음 흘러나왔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자리에서, 마치 얼어붙은 자세로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이 곡을 받아들이려 했다.
악기 편성이라고는 별 거 없다. 기실 이 앨범 전부가 그렇다. 그래. 맞다. 메인스트림 팝 프로듀서의 관점에서는 평이하게 들릴 수 있는 음악이다. 감정을 격렬하게 폭발시키거나 역동적으로 리듬을 몰아치는 구간이라고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게 좋았다.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만으로 일궈내는 루시드폴 세계의 섬세함을 애정 했다.
그렇다고 오로지 기타와 보컬만으로 채워낸 건 아니다. '삼청동'에서는 재즈 지향의 편곡으로 현재 루시드폴 밴드 구성의 원형을 슬쩍 제시하고, '들꽃을 보라'에서는 유희열이 연주한 피아노를 포함, 제법 다채로운 악기 편성으로 음반의 정적인 흐름에 악센트를 부여한다. '그건 사랑이었지'의 경우, 김연우에게 먼저 줬던 버전과의 비교 청취가 필수다. 이 곡에서 그는 김연우의 것에 그나마 있었던 '다이나믹'함을 싹 빼버렸다. 그는 지움으로써 저 자신을 완성하는 뮤지션이다.
뭐랄까. 그의 음악은 관상용 식물을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보고 있으면 마음에 평온의 커튼이 드리우는 듯한 음악이다. 마지막 곡 '몽유도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 곡, 무려 8분이 넘는다. 이거 참, 위에 언급한 프로듀서가 알았으면 가히 기함을 할 수준이다.
어쩌면 이 곡은 루시드폴이 최근 발표한 앨범 [너와 나]와 맥이 닿아있다고도 볼 수 있다. 반려견을 주제로 한 [너와 나]처럼 이 곡에서 루시드폴은 초반 1분 30초를 물 흐르는 소리로만 채웠다. 심지어 가사도 없다. 그는 이 곡에서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소리와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의 소리가 하나 되는 이상향을 그린다. 곡 제목이 '몽유도원'인 이유다.
음반의 성취를 논함에 있어 가사를 빼놓을 수 없다. 굳이 "당대의 시인들과 경쟁한다"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격찬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저 '물이 되는 꿈'의 가사를 되풀이해 곱씹어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이 곡에서 지극히 단순한 패턴의 노랫말로 가슴 한복판에 보드라운 물결을 일으킨다. 그중에서도 중간에 무심한 듯 툭 끼어있는 "내가 되는 꿈"이라는 구절과 "다시"라는 부사를 통해 발생되는 언어의 전압이 특별하다. 과연, 메인스트림의 화려한 조명에만 가치를 두는 프로듀서가 당황해할 만한 가사요, 노랫말이다.
루시드폴 [오, 사랑](2005) 앨범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