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lon Aug 17. 2020

John Scofield가 꺼낸 스승에 관한  이야기

장르 인사이드 #재즈

재즈 기타의 명인 John Scofield의 최근 앨범 [Swallow Tales]는 여러모로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입니다. 이 앨범은 Scofield, Steve Swallow(베이스), Bill Stewart(드럼)로 짜인 탁월한 트리오가 2004년 앨범 [En Route](버브) 이후 16년 만에 함께 녹음한 음반이며, 그럼에도 이들의 스튜디오 녹음으로서는 첫 앨범이었고, 특히 Scofield가 밴드 리더로서는 처음으로 ECM 레코드와 음반을 제작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글ㅣ황덕호 (음악평론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해, 이 음반을 통해 Scofield가 Swallow를 대동해서 함께 녹음한 것이 이제 정확히 4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며(그 첫 음반은 노버스에서 1980년에 발표한 [Bar Talk]였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번 앨범 [Swallow Tales]는 앨범 제목이 암시하듯이, 전체가 Steve Swallow의 곡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번 앨범은 John Scofield가 연주한 Steve Swallow 작품집입니다.

 

John Scofield, Steve Swallow, Bill Stewart - She Was Young

John Scofield, Steve Swallow, Bill Stewart - Falling Grace

John Scofield, Steve Swallow, Bill Stewart - Portsmouth Figurations


재즈에는 많은 베이스의 명인들이 있지만 Steve Swallow를 그 명인들 중 한 명으로 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1960년부터 시작된 60년의 활동 가운데 그의 순수한 리더 앨범(Carla Bley 등과 함께 발표한 공동리더 앨범을 빼고)은 대략 10여 장 정도며 그것 역시도 늘 활동하는 정규밴드와 녹음했던 것이 아니라 앨범 프로젝트에 따라 임시로 조직한 스튜디오 밴드를 통해서 녹음했기 때문에 라이브를 통해 그가 팬들의 주목을 꾸준히 받으며 무대 전면에 나섰던 적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울러 그는 Jaco Pastorius, Stanley Clarke(이들은 모두 1951년생입니다)과 같은 일렉트릭 베이스의 대표적인 비르투오소들보다 10살 이상 위인(1940년생) 선배 연주자임에도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수더분한 스타일의 베이스 주자라는 점도 그에게 화려한 조명이 가지 않는 하나의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간과하기 쉬운 한 가지 이력이 있습니다. Jimmy Giuffre, Art Farmer의 '60년대 음반들을 좋아하시는 모던재즈 팬들은 아시겠지만 그는 당시 그들의 밴드에서 어쿠스틱 베이스(더블베이스) 연주자였습니다. 그러다가 '60년대 후반 Gary Burton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그의 악기는 일렉트릭 베이스(베이스 기타, 심지어 종종 5현 베이스 기타)로 점차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선례로 베이스 주자 Bob Cranshaw를 꼽을 수 있겠지만 Steve Swallow의 변화는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재즈-록으로 대표되는 재즈의 변화에 조응한 것이기도 했지만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를 통해 그의 음악적 특성이 보다 명확히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John Scofield Trio와의 연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모든 베이시스트들이 그렇지만 음악의 흐름 속에서 정확한 워킹에 늘 집중합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솔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조자 그 기조(基調)를 깨뜨리지 않습니다. 그때 음악은 마치 잠시 격랑이 잦아들면서 고요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잠시 후에 다가올 파고를 기다리듯 묘한 긴장을 느끼게 합니다. 만약 그러한 연주를 어쿠스틱 베이스로 연주했다면 그 분위기는 매우 무디게 전해졌을 겁니다.

더욱이 그는 베이시스트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작곡가입니다. 심지어 그의 작품은, 보통 베이스 주자들의 곡이 리드미컬하고 화성적인데 반해, 무척 다양하면서도 심지어 선율적인 매력마저 갖고 있습니다. 작가 Robert Creely의 시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한 왈츠곡 'She Was Young'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Gary Burton이 늘 Swallow와 함께 활동하면서 'Falling Grace'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을 즐겨 연주한 것도 작품의 선율적인, 서정적인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다음의 곡들은 Swallow가 리드한 녹음이거나 그가 사이드맨으로 참여해 녹음한 그의 작품들입니다).


Steve Swallow - She Was Young...

Gary Burton, Pat Metheny, Steve Swallow, Antonio Sanchez - Falling Grace

Gary Burton Quartet - Portsmouth Figurations


John Scofield 역시 Swallow 작품의 매력을 오랫동안 느껴왔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1970년대 초, 당시 Gary Burton이 학과장으로 근무하던 버클리 음악대학에 John Scofield가 입학 했을 때 Steve Swallow는 그곳의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고 이때부터 Scofield는 Swallow 작품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버클리 음대에서 재즈 스탠더드 학습용으로 만들기 시작한 "리얼북"을 Steve Swallow가 '93년 자신의 앨범 제목으로 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 연주자가 된 뒤 1980년부터 Scofield는 Swallow를 자신의 트리오의 베이시스트로 기용해 두 사람은 밴드 동료가 되었지만 Scofield는 Swallow와의 관계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것처럼 지금도 나의 스승이다."


Scofield가 이야기했듯이 Swallow의 작품들은 그에게는 일종의 스탠더드 넘버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년 넘게 이 작품들을 익혀왔기 때문입니다. 드러머 Bill Stewart는 빠르게 이 곡들을 익혔고 그래서 이 트리오는 많은 리허설 없이 단숨에 이 앨범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Swallow의 곡들을 연주해온 Scofield인 만큼 이 앨범의 매력 중의 하나는 'Falling Grace', 'Hullo Bollinas', 'Radio'와 같은 잘 알려진 곡들은 물론이고 'Awful Coffee', 'In F'와 같은 흔히 들을 수 없는, 이전에 녹음된 바 없는 Swallow의 곡을 이 앨범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Swallow 작품의 서정성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사실 이 두 곡만을 놓고 보더라고 Swallow의 작품은 대단히 넓은 정서적 폭을 갖고 있습니다. 서정미와 더불어 그 반대편의 건조한 모더니즘, 톡 쏘는 듯한 유머에 이르기까지 그의 세계는 동시대 재즈 음악인들의 정서 모두를 아우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Scofield가 관악 앙상블의 반주에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이미 '96년에 녹음한 바 있는 'Away'의 로맨티시즘이 있는가 하면, 여기 선곡에서 앨범 [Swallow Tales]에 보너스 트랙 격으로 붙여놓은 'Name That Tune'(Scofield Trio의 2003년 작 [En Route]에 수록되어 있습니다)은 Swallow가 만들어 놓은 정통 비밥 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John Scofield, Steve Swallow, Bill Stewart - Awful Coffee

John Scofield, Steve Swallow, Bill Stewart - Eiderdown

John Scofield, Steve Swallow, Bill Stewart - Hullo Bolinas

John Scofield, Steve Swallow, Bill Stewart - Away

John Scofield, Steve Swallow, Bill Stewart - In F

John Scofield, Steve Swallow, Bill Stewart - Radio

John Scofield - Name That Tune


어떤 면에서 Steve Swallow 다양한 작풍은 스스로를 재즈계에서 "마이너리티"로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치 Billy Strayhorn의 작품처럼 그의 다양한 성격의 작품들은 연주자로하여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늘 서정적인 왈츠로 연주되던 'Hullo Bolinas'가 색소포니스트이자 편곡자인 Ohad Talmor와의 작업을 통해 전위적인 실내악 작품으로 탈바꿈되는 모습, 그러면서도 Swallow 베이스가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구슬픈 멜로디는 그의 음악이 갖고 있는 다면성을 보여줍니다. Steve Swallow가 자신의 앨범들을 지금껏 자신의 작품만으로 대부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으로 앨범을 낸 다른 메이저 재즈 연주자가 없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Scofield의 앨범 [Swallow Tales]는 주목할만한 작품집이며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대로 Swallow의 작품들은 반드시 그렇게 연주될 필요가 있는 곡들입니다. 동시에 John Scofield는 그러한 작업의 적임자였으며 Swallow의 음악을 40년 넘게 배급해온 ECM 레코드가 이 음반을 발매한 것은 Scofield의 표현대로 "Swallow 음악의 본성처럼, 하나의 원이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Pete La Roca – Eiderdown

Steve Swallow & Ohad Talmor Sextet - Hullo Bolinas

Gary Burton, Steve Swallow, Roy Haynes, Tiger Okoshi - Radio




매거진의 이전글 해가 길어져도 밤은 오니까, 밤에 들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