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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Aug 27. 2020

독보적인 가연성을 통해 저 자신의 매혹을 완성하는 앨범

Sia [1000 Forms of Fear] (2014)

데뷔 앨범 아니다. 통산 6집이다. 그럼에도 시아(Sia)의 이름이 이 음반 이후 월드클래스 급으로 성장한 건 다음 곡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그래. 맞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박정현은 더욱 잘 알고 있을 그 곡, 'Chandelier'다. 빌보드 싱글 차트 성적은 당연히 좋았다. 8위에 오르면서 커리어 사상 최초의 빌보드 핫 100 진입곡이 됐다. 이 외에도 영국에서는 6위를 기록했고, 여러 국가에서 사랑받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사진 출처ㅣ@SiaMusic


잠깐 시제를 미래로 돌려본다. 확언할 수 있다. 시아는 앞으로도 좋은 곡을 여럿 쓸 것이다. 그는 그만큼 뛰어난 작곡가요, 가수다. 쉬이 소진되지 않을 재능 덩어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어떤 곡도 'Chandelier'의 위엄을 넘어서진 못할 거라는 느낌적 느낌을 부인하긴 어렵다.

뭐, 그래도 괜찮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우리는 라디오헤드의 광활한 세계가 'Creep'이라는 단 한 곡으로 정의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끝내 'Creep'만 호명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사람을 두고 음악 팬이라 부르기엔 아무래도 좀 곤란하다. 시아의 음악도 그렇다. 아는 사람은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이 음반의 다른 수록곡들도 마찬가지다. 'Chandelier'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렸지만 뭐 하나 모자람 없이 빼어난 곡들이 여럿이다. 형식은 다채롭고 내용은 충만하다. 곧장 이어지는 'Big Girls Cry'만 해도 멜로디, 비트, 곡 전개 등, 전체적인 만듦새에 시아만의 기품이 깃들어있다.

그렇다. 기품이다. 그의 곡은 왠지 모르게 클래식하다는 뉘앙스를 던진다. 변용이 아닌 전통적인 작법이 근거한 곡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요즘처럼 속삭이듯 노래한다거나 랩-가창이 아닌 "열창"을 선호한다는 점도 이런 인상을 강화한다.

무엇보다 그는 드라마틱한 곡 쓰기에 있어 천부적이다. 그러면서도 곡 중간에 절묘한 전환을 집어넣어 입체적인 구성미를 길어 올린다. 'Chandelier' 못지않은 절창을 과시하는 'Eye of The Needle'을 들어보라. 포복하듯 느리게 전진하는 이 마칭 밴드풍 음악의 원동력은 어디까지나 시아의 보컬이다. 그 중에서도 3분 이후의 구간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마저 그대로 두면서 곡이 쥐고 있는 강렬함을 배가한다.

과연, 그는 클래식하되 그것을 매끈한 형태로 다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한데 매끈과 세련은 좀 다르다. 매끈함이 필요 이상의 과함을 뜻한다면 세련은 정확함에 가깝다. 시아의 음악은 클래식하다. 그렇다고 구식은 아니다. 세련된 비트만 놓고 보면 그는 차라리 슈퍼 모던한 뮤지션이다. 이를테면 투-트랙 전략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열정을 투사하는 보컬 뒤를 정교하게 설계된 비트가 받치는 식이다.

이런 방법론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과녁은 오직 하나, 음악을 통해 듣는 이에게 잊지 못할 여운과 쾌감을 남기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고 나면 후련해진다. 한번 상상해보라.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를 몽땅 소진한 자를 두 눈으로 목격할 때 우리는 대체로 그 대상을 선망하게 된다. 시아의 음악을 듣고 난 후의 감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쉰 소리는 도리어 강점으로 작용한다. 스카와 로큰롤, 뉴 웨이브 등이 혼재해있는 'Hostage', 스트링과 피아노 편곡이 돋보이는 발라드 'Straight For The Knife', 우아한 선율과 장엄한 코러스로 'Chandelier'만큼이나 사랑받았던 'Elastic Heart' 등, 그 어떤 곡에서도 돋보이는 건 시아의 개성 넘치는 보컬이다. 그는 가히 목소리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가수다. 바로 그의 곡 듣기가 경험을 넘어 체험의 단계까지 육박할 수 있는 바탕이다.

그리하여 정점은 거의 7분에 달하는 마지막 곡 'Dressed in Black'에 위치한다. 기실 그의 목소리는 3분 팝송에도 적격이지만 소위 "에픽(epic)", 그러니까 "대곡"에 유독 어울리는 성질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아. 이 곡, 정말이지 끝내준다. 영롱하게 울려 퍼지는 도입부를 지나 간절한 톤으로 한껏 출렁거리는 시아의 보컬이 등장하고, 연주는 거대한 파도처럼 듣는 이를 압도한다. 7분이 아니라 3분, 길어야 4분쯤 되는 곡 같다. 그만큼 설득력이 높다는 의미다. 음악적으로 탁월한 "긴 곡"이 대개 이렇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나도 모르는 새에 실천하게 해준다.

수록곡 중 하나의 제목인 'Fire Meet Gasoline'에 주목하길 바란다. 시아의 보컬이 "불"이라면 작곡 능력은 "가솔린"이라 할 수 있다. 불이 가솔린을 만나 쉬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작품이 여기에 있다. 독보적인 가연성을 통해 저 자신의 매혹을 완성하는 앨범, 시아의 [1000 Forms of Fear]다.



Sia [1000 Forms of Fe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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