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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Feb 18. 2020

홍보는 노래로, 기억에 남는 아이돌X기업 컬래버레이션

국내 뮤직 트렌드

TV를 틀거나 포털 사이트에 들어갈 때 높은 빈도로 아이돌이 나오는 광고를 무수히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중 대부분은 정말 순수하게 광고의 피사체로서 모델 역할을 맡은 것이지만,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광고 음악을 부르며 퍼포먼스까지 진행하는 경우 역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중에는 손발의 오그라듬을 유발하는 참을 수 없는 컬래버레이션 트랙도 존재하지만(우리는 아직도 샤이니의 라면과자 광고를 기억하고 있다) 최근으로 올수록 점점 더 좋은 퀄리티의, 어쩌면 정식 레코딩에 수록되어도 위화감이 없을 듯한 트랙이 늘어나고 있다. 그냥 "광고 음악"이나 "CM송"으로 치부하고 넘겨 버리기에는 아까운, 좋은 K-Pop 트랙들을 살펴보자.


글 | 정구원 (웹진웨이브 편집장)




# 소녀시대 / f(x) 'Chocolate Love'


소녀시대가 커리어의 최정점을 찍고 f(x)가 데뷔한 지 1개월밖에 안 되었을 무렵, 핸드폰을 홍보하기 위해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된 'Chocolate Love'는 지금 다시 들어 보면 소녀시대와 f(x)의 노선을 갈랐던 최초의 시금석처럼 느껴진다. 빈티지한 신스와 뒤뚱거리는 베이스라인으로 레트로가 어떻게 현대 아이돌 팝에 적용되는지 보여주는 소녀시대의 버전과 초소형 전기톱처럼 지글거리는 전자음을 곡 전체에 흩뿌린 f(x)의 버전은 이 두 그룹이 이후에 걸었던 행보를 생각하며 들으면 더욱 흥미롭다.



물론 그런 "사후적"인 관점으로 듣지 않아도 'Chocolate Love'는 충분히 매력적인 곡이다. "woo 그댄 제법 쉽지 않아 보여 / 하지만 느낌이 와요"로 시작하는, SM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훅 치고 들어오는 맛이 있는 브릿지에 혹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리라.


소녀시대 (GIRLS` GENERATION) - Chocolate Love (Retro Pop Ver.)

f(x) - Chocolate Love (Electronic Pop Ver.)




# 마마무 '기대해도 좋은 날'


김도훈이 주로 프로덕션을 맡은 마마무의 타이틀 트랙들은 이들의 보컬 역량과 다채로운 매력을 극명하게 살려내는 작∙편곡으로 마마무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았다. 하지만 가끔은 ('너나 해'에서 "멋대로만 해"라고 쏘아붙이거나 음정을 싹 빼고 연설조로 "나로 말할 것~"으로 코러스를 시작하는 '나로 말할 것 같으면'의 경우처럼) "끼가 넘치는 엉뚱한 매력의" 훅을 기어이 끼워넣고야 마는 전개 대신 직선적이기만 한 팝을 부르는 마마무를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그런 바람을 충족시켜 주는 곡들은 'Girl Crush', 'Taste The Feeling', '매일 봐요', '다 빛이나' 등의 CM송들이다. 홍보라는 목적이 "끼"보다는 깔끔한 메시지 전달을 더 중시하게 만든 것일까? 마마무는 이러한 CM송을 멤버별로 또렷하게 나뉘는 고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다 일반적인 팝에 가까운 매끄러운 전개를 시도하는 테스트베드로 삼는 것처럼 느껴지며(그런 점에서 작곡가 팀 코스믹 사운드는 좀 더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그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곡은 역시 '기대해도 좋은 날'일 것이다. 스트레이트하게 뻗은 장조 멜로디를 파워풀한 보컬로 풀어내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Can't Stop The Feeling!' (Justin Timberlake)나 'Love On Top' (Beyonce) 같은 21세기의 스탠다드 팝 명곡들이 가진 기운이, 이 곡에도 감돈다.


마마무 (Mamamoo) - 기대해도 좋은 날

마마무 (Mamamoo) - 매일 봐요

마마무 (Mamamoo) - 다 빛이나 (Gleam)

마마무 (Mamamoo) - Girl Crush

마마무 (Mamamoo) - Taste The Feeling




# Y틴 'Do Better'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은 때로 아이돌 그룹 사이의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현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두 아이돌인 몬스타엑스와 우주소녀의 멤버 7인이 통신사 요금제를 홍보하기 위해 함께한 프로젝트 그룹 Y틴 역시 그러한 예시 중 하나인데, 이러한 계기가 없었다면 아무리 같은 소속사라고 해도 함께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혼성 아이돌 그룹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K-Pop 시장의 환경에서는 더더욱.



깔끔하지만 전형적일 수도 있는 선 굵은 힙합 프로덕션을 살리는 것은 역시 두 그룹이 가지고 있는 기세일 텐데, 특히 우주소녀의 경우 2020년 현재까지도 이러한 콘셉트의 "강렬한" 음악을 본 활동에서 선보인 적이 없는 만큼 그 존재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시간이 된다면 몬스타엑스와 우주소녀가 각각 진행했던 CM송들인 'NEWTON'과 'KISS ME'도 체크해 볼 것을 추천한다.


Y틴 (몬스타엑스 X 우주소녀) - Do Better

우주소녀 - KISS ME (키스 미)

몬스타엑스 - 뉴튼 (NEWTON)




# 박경 '순간삭제'


박경이 쓰는 멜로디는 '자격지심'의 장난스러움이나 '너 앞에서 나는'의 멜로우한 로맨틱함, '귀차니스트'의 토라진 느낌 등 다양한 외피를 쓰고 나타난다. 그 모든 다양한 분위기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이 박경의 허스키한 굴림형 목소리에 언제나 착 달라붙는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그 "기분 좋음"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잘 살릴 수 있는 디스코그래피를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쌓아 나가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달콤한 순간을 꼽는다면 역시 '순간삭제'를 고르고 싶다. 2분 33초라는 짧은 시간 속에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탑 노트를 가득가득 채워 넣은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사처럼 왜 이 시간이 "금방 사라지"는지를 아쉬워하며 곡을 다시 돌려 듣게 된다. 박경 본인도 "처음에는 웹 광고로만 제작을 했는데 반응이 좋으니 TV 광고로 가자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고 말한 것을 보면(『아이돌의 작업실』, 박희아) 이 달달한 곡을 좋아하게 된 것이 나만은 아닌 것 같다.


박경 - 순간삭제 (켈로그 `초코크런치` CM송)

박경 - 자격지심 (Feat. 은하 Of 여자친구)

박경 - 너 앞에서 나는 (Feat. 브라더수)

박경 - 귀차니스트




# EXO 'LIGHTSABER'


이제는 하나의 전설적인 사운드 효과가 된 다스 베이더의 숨소리로 곡이 시작되고 후렴구에서 반복되는 "Lightsaber"와 함께 라이트세이버가 켜지는 효과음이 등장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면 사실 'LIGHTSABER'와 <스타워즈> 사이의 관계는 그다지 단단해 보이지 않는다. <스타워즈>에 충실한 뭔가를 기대한 팬이라면 이 곡에 그리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EXO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서 발표된 지 5년째를 맞이한 이 곡은 여전히 독특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언제나 "SM의 플래그십" 같은 느낌으로 온갖 역량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한 EXO의 곡들 중에서 이 정도로 힘을 빼고 여유로운 느낌을 전면으로 내세운 댄스 트랙은 없었으니까.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이 기존과는 다른 아이돌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시도로서 기능한다고 보았을 때, 'LIGHTSABER'는 그 역할에 가장 충실한 트랙 중 하나다.


EXO - LIGHTSABER




# K/DA 'POP/STARS'


이것이 아이러니한 일인지 자연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엇 게임즈가 제작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를 활용해 만든 가상 아이돌 K/DA의 'POP/STARS'는 (여자)아이들의 소연과 미연이 참여한 곡 중 가장 "K-Pop"스러운 트랙이다. 기존에 K-Pop을 만들던 작곡가가 아닌 게임 제작사의 작곡진이 곡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아이러니하지만, 소연과 미연이 (여자)아이들을 통해 항상 기존의 K-Pop에서 조금씩 비껴 나간 트랙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부인의 시선으로 K-Pop의 정수를 접합한 'POP/STARS'가 이들에게 있어 가장 "K-Pop"스럽다는 점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할 테니까.



그것이 "전형적이라서 지루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이 곡을 즐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라이엇 게임즈의 개발자 스케치는 그 이유에 대한 힌트를 준다. "초기 시안들은 너무 귀엽고 달콤하고 발랄했죠. 2018년이 아닌 2013년에나 출시했을 법한 콘셉트였어요. 거기에서 가능성에 대한 영감을 받아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자신만의 그룹을 결성하려는 솔로 아티스트에게 다음 단계란 무엇일까? 현재의 팝, 케이팝 가수를 살펴보면 힘차고 강한 여성상이 돋보이는 추세를 볼 수 있어요." 지금 (여자)아이들이 K-Pop계에서 이 설명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그룹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소연과 미연이 전형적인 "K-Pop" 트랙인 'POP/STARS'에서도 자신의 강력함을 보컬과 랩, 퍼포먼스로 마음껏 드러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들, Madison Beer, Jaira Burns, K/DA, League of Legends - POP/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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