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에 가장 근접한 결을 구현한 앨범

강산에 [강영걸] (2002)

by Melon

그대, 강산에의 라이브를 본 적 있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금껏 수많은 라이브를 봤다. 거기에는 평생 아로새겨질 강렬한 경험도 있었고, 피 같은 내 돈이 아까워 화를 참지 못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단언컨대 강산에는 전자(前者), 그것도 맨 앞 줄에 위치하는 뮤지션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의 라이브를 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한다. 그의 무대는, 그냥 최고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사진ㅣ강산에 페이스북


강산에의 라이브는 그의 캐릭터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다. 자유롭다. 유쾌하다. 그러면서도 탄탄하다. 그는 어설프게 흐늘거리지 않는다. 중심이 꽉 잡혀 있는 상태에서, 즉 음악의 기반이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다. 간략하게 표현해볼까. "어쩜 저리 분방하면서도 끝내주게 잘할까." 오늘도 나는 경탄의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그저 앙망한다.

장담할 수 있다. '명태' 같은 곡, 음반으로 들으면 1번 반하고, 라이브에서 보면 넉 다운된다. 하하. 이게 대체 어디에서 발생한 음악일까. 우리 음악이다. 서양 악기를 (주로) 썼음에도 우리 것이라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곡의 앞 뒤에는 성악가 오현명의 중후한 가창을 따와 '명~태~'라는 구절을 삽입했다. 이 지점에서 듣는 이는 킥킥거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음악이다. 아니다. 이것은 음악이라는 형식 위에서 펼쳐지는 한바탕 놀이다. 이 놀이의 궁극적 완성, 강산에에게는 무대가 되는 셈이다.

기타 리프는 펑크(funk)이고, 스크래치도 섞었는데 중간에는 아쟁이 튀어나온다. 강산에다운 발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질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의 라이브만큼이나 자연스럽다. 기실 강산에는 이 음반 이전에 이미 스타였다. 히트곡을 다발로 발표했다. '…라구요', '넌 할 수 있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삐딱하게' 등이 모두 사랑받았다. 하나, 그의 라이브에 가장 근접한 결을 구현한 '앨범'을 꼽자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라고 확신한다. 바로 이 작품 [강영걸]이다.

생동감으로 펄떡거린다. 그의 창조력이 절정에 달한 시기의 음악임이 확실하다. '와그라노'를 빼놓을 수 없다. 재기가 넘친다. 구수한 사투리와 우쿨렐레 연주를 현대적인 비트와 섞어냈다. 이 외에 어떤 곡에서는 루프와 프로그래밍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어떤 곡에서는 스트링과 트럼펫, 플루겔 혼 연주를 더했다. 여러 동료의 도움으로 젊은 감각의 수혈을 모색하는 중에 기초가 단단한 대지를 꾸려내려 했음이 분명하다. 물론 그 결과는 어떤 측면에서 조감해봐도 대성공이다.

그간 강산에가 겨냥한 수신인은 대개 외부에 있었다. 부모를 대신해 두만강과 흥남 부두를 그리워하거나 불특정 다수를 위한 응원의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물론 [강영걸]에 그런 곡이 없는 건 아니다. '넌 할 수 있어'와 유사한 주제의식을 품고 있는 '지금'이 대표적이다. 하나, 전체적으로 보면 [강영걸]은 강산에라는 인간의 역사를 두루 살핀다. '명태'에서는 함경도에 들렀다가 '와그라노'에서는 경상도로 내려가더니 'Moon Tribe'에서는 친구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식이다.

그리하여 종착역은 강산에 자신(과 주변)이 된다. 불안한 현실에 때로 흔들리지만('영걸이의 꿈') 결국 "태어날 때부터 노래하고 또 춤을 추고 있었어"라고 흥겹게 노래한다. 그 와중에 나뿐만이 아닌 너를 함께 언급하면서 듣는 이를 그의 세계로 끌어들이려 한다. 음반의 타이틀이 그의 본명인 이유다.

이렇게 그는 저 자신을 성찰하는 동시에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꾼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몸속에 이기적인 뼈라고는 없는 한 사람의 초상이 떠오른다. 그 초상, 여권을 활용한 앨범 커버 안 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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