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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으로 팝 뉴스를 접하는 분들은 최근 Nirvana의 옛 노래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1991년작 [Nevermind]의 수록곡, 'Something In The Way'가 그것이죠. 한참이나 과거의 노래가 왜 2022년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을까요?
당연히 계기가 있습니다.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영화, "더 배트맨"에 이 곡이 주요 장면들을 장식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제는 영화 "더 배트맨", 그리고 그 주제곡인 'Something In The Way'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으니, 안심하고 보셔도 좋습니다.
Nirvana / Something In The Way
음악 팬으로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더 배트맨"이라는 영화 자체가 Nirvana의 Kurt Cobain과 꽤나 깊은 관계성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다는 사실입니다.
맷 리브스는 영화의 초기 단계부터 작품 안에 Kurt의 캐릭터를 녹이는 데 관심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영화를 기획하고, 로버트 패틴슨을 주연으로 섭외하며 그가 "록스타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은둔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Kurt Cobain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억만장자임에도 누구보다 고독한 삶을 사는 브루스 웨인, 그리고 막대한 성공으로 부를 거머쥐었음에도 오히려 깊은 우울증으로 빠져들어갔던 Kurt Cobain. 두 인물의 캐릭터성은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묘한 평행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쯤 해서 "맷 리브스가 왜 Kurt의 이미지를 영화에 차용하려고 했을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Nirvana의 음악이 영화에 있어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했기 때문입니다.
맷 리브스는 영화의 각본을 쓰며 음악을 듣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 영화를 제작하면서는 Nirvana의 'Something In The Way'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 곡을 들으며 브루스 웨인에게 우리가 익숙한 플레이보이와 여피적인 모습보다는 비극을 겪고 은둔하는 모습이 떠올랐다고 하며, 그런 모습을 이번 영화에서 새로운 배트맨 캐릭터로 구현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영화 "더 배트맨" 안에서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묵직한 주제선율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많은 팬들은 이 멜로디가 'Something In The Way'의 선율 일부분을 변형해 만든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음악감독인 Michael Giacchino는 자신이 만든 OST와 이 곡이 잘 어울리고, 멜로디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는데요. 다만 운 좋게 우연히 들어맞은 것일 뿐이라며 확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재 "더 배트맨" OST의 작곡 크레딧에는 Michael Giacchino 1인이 올라 있습니다.) 때문에 Kurt의 음악은 영화의 캐릭터성뿐 아니라 OST 전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Michael Giacchino / The Batman (from "The Batman")
'Something In The Way'는 원래 Kurt Cobain이 자신이 방황하던 10대 시절에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Kurt는 집을 나와 노숙을 전전하던 시절은 있었지만 이 곡의 가사처럼 다리 밑에서 지낸 적은 없었다고 하네요.
어쨌든 노래에서 "Something"은 특정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의 어떤 대상이든 될 수가 있습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이 "Something"은 어둠 속에 숨어있는 "배트맨"이 될 수도 있고, 누군지 정체를 모르는 "리들러"가 될 수도 있으며, 작중 등장하는 "핵심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추리물의 성격 또한 띠고 있기 때문에, 선곡이 극중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고독하고, 고단하고, 번뇌하는 히어로 배트맨이 리부트됨과 함께, 마찬가지로 고단한 삶을 살았던 Kurt, 그리고 Nirvana의 옛 노래 역시 차트에서 리부트되고 있습니다. 영화가 꾸준한 흥행을 기록함과 함께 곧 메인 차트에까지 등장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모처럼 Nirvana에게 새로운 어린 팬들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Nirvana의 오랜 팬들이라면, 묘한 감정을 느낄 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