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스터링 판 구입시 고려해야 할 기준이 있다면?

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by Melon

며칠 전,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LP 원판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전에 페이스북 친구가 정경화 선생의 LP를 듣다가 음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글을 올려서 그 판의 데카 원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얼마 후에 신세계가 열렸다며 제게 정말 고마워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글ㅣ한지훈(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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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든 판을 다 들어본 건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원래 DG나 데카에서 나왔던 판인데 그 판의 리이슈판이나 국내 라이센스판을 듣다가 원판으로 들어보면 누구라도 음질이 좋아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DG의 판이 그런데요. 예나 지금이나 LP판은 독일 > 영국 > 미국 ≥ 일본 > 체코를 비롯한 동구권 국가 순으로 잘 찍습니다. 저도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서촌] 앨범을 제작할 때, 독일과 일본, 체코 중 어디에서 프레싱을 할까 고민을 하다 결국 독일에서 찍었죠.


물론 이 이야기는 절대 일반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프레싱 년도, 보관 상태, 그리고 얼마나 들었는지, 어떤 카트리지를 썼는지, 카트리지의 침압은 어땠는지에 따라 LP 상태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렇다는 이야기이지 무조건 독일에서 프레싱한 DG 앨범이 음질이 가장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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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든 판이 이런 것도 아닙니다. 제가 가장 어처구니없어 하는 게 가요 앨범 가지고 원판이니 어쩌니 따지는 건데요. 우리나라는 LP를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좀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1970년대까지는 빽판과 라이센스판의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죠.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녹음을 잘 했을까요? 제 기억에 우리나라에서 녹음 음질을 논할 수 있는 가수라면 김현철 이후 세대 정도, 즉 199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음질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가수 중에서는 녹음 잘 하기로 유명한 윤상이나 이승환, 조규찬, 故 신해철 등의 앨범도 1집은 차마 빈말이라도 음질 좋다는 말을 못할 수준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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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판이라고 별반 다를 것 없습니다. 러시아제국 출신의 음악가들, 이를테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야사 하이페츠,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레오니드 코간 등등의 연주자는 DG나 데카의 녹음과 다른 레이블의 녹음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래의 두 앨범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죠.


David Oistrakh [Tchaikovsky: Violin Concerto Op.35 / Wieniawski: Etude-Caprices Nos.2, 4 & 5 / Sarasate: Navarra, Op.33]


Leonid Kogan [Mendelssohn, Bruch & Bach : Violin Concer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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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이베이에 4999.99불에 올라와있는 레오니드 코간의 초판 LP 가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는 중국 컬렉터들의 농간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몇 년 전부터 용산과 세운상가의 오디오 판매점에는 중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특정 브랜드(웨스턴 일렉트릭, 탄노이, 구형 JBL 등)의 앰프와 스피커들을 무더기로 사가며 어떤 제품은 몇 년 사이에 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르기도 했죠(대표적으로 웨스턴 일렉트릭의 755A 스피커). 이처럼 중국의 부자들이 오디오와 앨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타겟이 된 제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격이 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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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요 앨범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몇몇 평론가들이 "이 앨범은 정말 역사에 남을 명반입니다."라고 평을 하면서 앨범 가격이 100배 이상 뛴 앨범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요. 김광석의 앨범이 대표적이죠. 예전에는 안 팔려서 3,000원에 재고처리 하던 김광석 앨범이 지금은 노오픈의 경우 수십만 원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금전적인 가치를 제외하고 음질만 놓고 비교해봤을 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제 경험이나 다른 오디오 애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음질만 놓고 비교해본다면 마스터 테이프를 가지고 일본에서 리마스터링한 SACD가 음질은 가장 좋습니다. 턴테이블의 세팅 상태에 따라 LP로도 그와 유사한 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는 있지만 그 정도로 턴테이블 세팅이 잘 되어있는 집은 흔치 않은 반면 좋은 SACD 플레이어는 돈만 있으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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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부터 멜론 Hi-Fi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해볼까요? 멜론에서도 같은 앨범이라도 원판과 리마스터링된 판을 동시에 서비스하는 음원이 있습니다. 어차피 리마스터링된 음원의 스트리밍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그 음원은 멜론에서 리마스터링 하는 게 아니라 앨범 제작사에서 리마스터링 한 것을 멜론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하는 것이니 리마스터링 된 판을 고르는 방법을 알려드리자면...


일단 LP의 경우 리이슈하는 판의 원본이 마스터 테이프인지, CD인지, LP인지 확인하세요. 마스터 테이프라면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에 릴 테이프 레코더 캘리브레이션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입니다. 캘리브레이션도 제대로 안 되어있는데 마스터링/리마스터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외국의 경우, 특히 일본의 경우는 다릅니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리마스터링을 가장 잘 하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만약 원본이 CD라면 그건 CD를 턴테이블을 통해 듣는다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 없고(LP와 CD는 마스터링 과정이나 마스터링 결과물의 소리가 완전히 다르고, 달라야 합니다), 원본이 LP라면 그게 바로 빽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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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adeth의 최고 명반인 [Rust in Peace] 앨범의 리마스터링 앨범은 'Take No Prisoners', 'Five Magics', 'Lucretia'의 원본 마스터 테이프를 분실하여 보컬을 새로 녹음했습니다. 오리지널 앨범과 리마스터링된 앨범을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제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모든 상품의 가치가 제품의 품질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거의 대부분의 명품은 존재의 이유가 없어지죠. 또한 이 글은 절대 모든 원판의 가치를 부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남들의 말에 혹하기보다 본인 스스로 판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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