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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Wind & Fire를 거쳐간 수 명의 사람들 중에는 세 명의 'White'가 있었습니다. 2016년 세상을 떠나며 국내에서도 큰 추모 물결을 일으켰던 팀의 중핵 Maurice White. 그리고 그의 동생인 베이시스트 Verdine White.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복동생이자 밴드의 드러머, Fred White.
2023년 1월 1일, Fred White의 사망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인은 불명으로, 향년 67세였습니다.
그는 10대 시절에 이미 Donny Hathaway의 투어를 돌며 드러머로 활동하다가, 역시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Earth, Wind & Fire로 합류한 천재 드러머였습니다. 아래 Donny Hathaway의 라이브 트랙은 그의 15세 시절 드럼 연주를 담고 있습니다.
Donny Hathaway - The Ghetto (Live @ Troubadour, Hollywood, CA.)
Earth, Wind & Fire에서는 1975년 [That's The Way Of The World]부터 1983년 [Electric Universe]까지 드러머로 참여했으니, 밴드의 전성기를 함께한 멤버라고 표현하면 설명이 맞을 겁니다. 'September', 'Fantasy', 'Boogie Wonderland', 'Getaway', 'Shining Star', 'That's the Way of the World' 등의 명 트랙에서 들리는 드럼사운드가 모두 그의 연주입니다.
Earth, Wind & Fire – September
Earth, Wind & Fire – Boogie Wonderland
Earth, Wind & Fire – Shining Star
Earth, Wind & Fire – That's the Way of the World
주지하다시피, Earth, Wind & Fire의 핵심은 펑크(Funk) 사운드입니다. 쫄깃한 그루브를 위해서는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세션 역할이 특히나 중요할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Fred White는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밴드와 하나가 되어 안정적인 리듬을 가져가는 타입의 드러머였습니다. 때문에 튀는 멤버는 아니었지만, 밴드에서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었죠.
재미있는 점은 Earth, Wind & Fire의 드러머가 한 명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당시 Fred White가 밴드로 합류했을 때 밴드의 다른 드러머가 있었으니, 바로 Ralph Johnson입니다. 두 명의 드러머는 함께 무대에 올랐고 수많은 명연을 만들어냈습니다.
Fred White는 1980년대 초에 그룹을 떠나며 스틱을 놓았지만, 음악활동을 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로는 Rod Stewart, Joe Cocker 등 굵직한 뮤지션들의 녹음반에서 백보컬 가수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Diana Ross의 2021년 컴백작 [Thank You]에서도 작곡자와 백보컬로서의 그의 크레딧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arth, Wind & Fire는 2000년에 음악인들의 최대 영예라 할 수 있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이 때 Fred White의 이름도 함께 올라갔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는 '그의 유산은 록에서 펑크(Funk)까지, 또 K-Pop까지 닿아있다'는 소셜미디어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K-Pop까지 닿아있다'는 말에 의아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가깝게는 방탄소년단의 'Dynamite'만 해도 찰캉거리는 기타 소스는 펑크(Funk)/디스코 사운드에서 온 것입니다. Earth, Wind & Fire는 그 펑크(Funk)/디스코 음악을 발전시키고 인기있게 만든, 첨병과도 같은 밴드였고요.
너무 두루뭉술하게 느껴진다면, 보다 직접적인 얘기도 해볼까요? 2003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김진표의 '아직 못다한 이야기 (Feat. BMK)' 역시 Earth, Wind & Fire의 'Fantasy'를 샘플링한 곡이었습니다. 잘 모르고 계셨다면 아래 두 트랙을 비교해서 들어보세요.
Fred White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남아있는 형제인 Verdine White는 '그가 나쁘게 보이는 상황을 더 가볍게 만들어주곤 했기 때문에 그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이를 통해 보면 밴드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마치 The Beatles에서 Ringo Starr가 그랬던 것처럼, Fred 역시 분위기를 만들고 멤버들을 중재하는, 훌륭한 인격자가 아니었을지 짐작해봅니다.
망자는 떠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음악계의 유산 속에서 그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Earth, Wind & Fire의 음악을 만나면 Maurice White와 Fred White, 이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지면을 빌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