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제 논의 포문만 열어도 한국 존재감 'UP'
북핵 문제의 근본 원인은 힘의 균형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이 군사력은 물론 동맹국과의 관계, 대외 명분, 전쟁 발발 시의 피해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누구도 쉽사리 선공할 수 없는 힘의 균형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력이 강하지만 북한이 게릴라성 핵무기 공격을 한발이라도 성공한다면 이기고도 지는 전쟁이다. 경제력이 압도적이지만 전쟁으로 입는 경제적 피해도 크다. 동북아에서의 미국 영향력 확장을 저지하려는 중국의 개입 가능성도 골칫거리다. 2차 한국전쟁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한국 정부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핵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미국 본토 공격이 가능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데도 미국은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을 쓰고 있다. 가성비 좋은 비대칭 전력 핵무기를 개발한다. 그 핵무기를 들고 미친척 칼춤을 추며 상대를 위협한다. 게임이론의 미치광이 전략이다. 미치광이 전략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맞불 전략이다. 현재 김정은과 트럼프가 거친 말싸움을 벌이는 이유다. 트럼프가 "이 구역 미친놈은 나"라며 맞불을 놓고 있지만 이는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결과다. 체급이 훨씬 큰 미국이 북한에 끌려가는 형세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을 미치광이로 만들었으니 북한은 이미 의문의 1승을 거둔 셈이다.
'미치광이 전략' 말고도 약자가 강자 패거리를 만났을 경우 택하는 또 다른 전략이 있다. '한놈만 패기' 전략이다. 졸개들 상대하느라 힘을 분산시키지 않고 무리의 대장을 집중 공략해 이기면 무리 전체를 이기게 된다.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황에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미국과 1:1로 협상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북한 스스로의 이득을 최대한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변국들을 당황케 하는 측면이 있는데 중국은 이런 북한을 은근히 괘씸해 하고 있고 한국은 '코리아패싱'이라는 망신을 당하고 있다.
모든 플레이어의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아예 장기판을 뒤엎는 것이 묘수다. 연방제 통일 논의가 그것이다. 하나의 국가에 자본주의 남한정부와 공산주의 북한정부가 공존하며 물리적 교류를 늘려나가는 느슨한 형태의 연방국가. 지금껏 북한은 연방제 통일을 통한 사회주의 체제 보장을 주장해 왔다. 한국은 북한의 연방제 통일 주장이 적화통일을 위한 교두보라고 일축해 왔다.
시대가 변했다. 이미 체제경쟁이 끝난 지금 연방제 통일 후 북한이 공산주의 사상을 퍼뜨려 한국을 적화통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막대한 통일비용이 들어가는 완전 흡수통일을 원하는 국민도 많지 않다. 그렇다면 연방제 통일로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과 한반도 평화를 바꾸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 버티고 있는 이상 북한의 전략이 쉽사리 수정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연방제 논의의 물꼬를 트는 것만으로도 한국 정부는 새로운 대북 트랙을 만들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북미 양자협상이나 6자회담 대신 남한이 주도권을 갖고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구도가 나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사태가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국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