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말고 소비자가 선택하게 하자.
여기 심판이 있다.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감시하는 것을 넘어 경기의 규칙까지 마음대로 바꾸는 심판이다. 한쪽 편을 들어 편파 판정을 한다. 심지어는 경기에서 이기고 있는 팀을 실격시켜 자의적으로 승자를 결정한다. 경기를 잘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심판에게 잘 보이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심판이 이 모양이면 선수들은 실력을 키우기 보다 심판에게 로비하는 일에 힘을 쏟게 된다. 경기는 엉망이 되고 관중은 떠나간다. 결국 해당 스포츠는 인기를 잃고 선수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한국 산업 전반의 이야기다. 정부가 심판 역할을 넘어 자의적으로 승패까지 결정하려는 폐습이 국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 청년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창업하면 불법 낙인을 찍어 범죄자로 만든다. 사실상 기득권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진짜 경기는 스타트업과 기득권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두고 경쟁하는 것인데 애초에 경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이 시위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 경쟁 없이도 밥그릇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심야 승차공유 서비스인 ‘콜버스'가 그랬고 현재의 카풀 서비스 위법 논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왜 이 모양일까. 한국이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다. 산업의 모든 영역을 정부가 하나하나 정해줘야만 사업을 할 수 있다. 60~70년대 개발국가 시절에는 이 방식이 효율적이었다. 민간의 교육수준이 낮고 해외 경험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유학시킨 관료들은 중화학 공업 중심으로 한국 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민간이 정부에 앞선다. 정부가 미리 정해놓은 틀에서만 사업 하라는 것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사업은 시도조차 말라는 것이다. 혁신성장을 아무리 외쳐도 제대로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답은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는 몇가지만 금지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이다. 심판이 게임의 룰을 맘대로 정할 것이 아니라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일반 공무원은 이런 변화를 시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변화를 꾀하다 반대 민원이 제기되면 인사 고과에 부정적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도 표를 따라 움직이기에 쉽지 않다. 언제나 혁신 세력이 적고 기득권 세력은 많다. 결정권은 정부와 국회가 쥐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이런 것 하라고 대통령이 있다. 콜버스를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차라리 대통령이 책임지고 지시를 내린다면 정말 열심히 개선할 준비가 돼있다고 했다. 우리가 직접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대의 민주주의를 하는 것은 대중의 단기적 이익이 아닌 국민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다. 창업이 늘어야 일자리가 는다. 이제 일자리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