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조건

언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냐면.

by him있는 이상주의자

결혼은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으로.


#1 (각종 방송 장비가 있는 미술관)

(나) 은해야 나랑 결혼해줄래

(아내) <깜짝 놀라며> 이거 뭐야?

#2

(나) (뿌듯한 얼굴로) 프로포즈 장면이 생중계되고있어

(부러워하며 프로포즈를 보고 있는 아내 친구들)

#3

(아내) (깜짝 놀라며 얼굴가리며) 이거 뭐야 당장꺼

#4

(나) (깨달음) 아, 프로포즈는 내가 원한거였구나!!!

나는 예전에 결혼 때문에 취업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사업하는 남자는 결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지만, 30대에 안정된 직장 없이 들쑥날쑥한 수입과 한 주에 7일, 하루에 24시간 가까이 일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이는 성공의 여부와도 상관없다. 사업을 하다보면 잘 나가다도 망하기도 하고 인맥관리를 위한 수많은 만남과 빠른 시대 변화에 따른 신사업에 대한 모멘텀을 찾느라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35살에 5억에 가까운 빚이 있었고, 그 당시에는 회사도 불안해서 수입도 일정치가 않았다. 집은 평범했고, 사회 진출을 위한 20대엔 공연만 다녔고, 대학은 ‘이번에 복학하지 않으면’ 퇴학 시키겠다는 협박(?)에 31살에 겨우 졸업했다. 하지만 난 성공할 꺼라고 말한다. 내가 성공해서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말한다. 내가 여자여도 이런 남자는 최악이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경우 묵묵히 기다리고 응원해주는 여자 친구가 더러 있지만, 현실에서는 혼기가 찬 여자에게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남자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나는 이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당시 내 여동생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오빠 같은 남자랑 누가 결혼하겠냐”


33살. 내가 창업한 지 약 4년 되던 해에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 사람들을 만날 때면 늘 밝게 웃었고 자신감에 차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자존감은 바닥이었으며 혼자 있을 때는 나에 대한 자책으로 매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겐 일상이었던 광고에 고민이 있는 기업과의 미팅이 생겼다. 당시 나에게 많이 도움을 주던 웹에이젼시 회사의 대표였던 형이 후배이니 잘 도와주라며 저녁자리를 만든 것이다. 영업을 잘해서 우리 회사에 일을 맡기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 소개서 한부를 출력해서 저녁에 만나게 되었다. 패션회사를 운영하는 여자 대표인데 상당한 미인이었고 회사 제품을 소개하는 열정적인 모습에 나는 반하고 말았다. 나의 초라한 상황은 모두 잊어버리고 말이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몇 번을 만났다. 이성으로써 마음은 갔지만 이 당시엔 내 상황상 연애는 꿈도 꾸지 못했다. 회사 월세도 못 내는 상황에서 무슨 연애를 하랴. 하지만 오히려 이런 극한 상황은 내 마음을 가볍게 했다. 그래, 그냥 편한 친구로 지내자. 연애할 것도 아닌데 뭐 눈치 볼 거 있나. 편하게 연락하고 불편해하면 말지 뭐. 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통했었을까. 우린 더욱 가까워졌고 결국 연애를 시작했다. 만나면 늘 새로운 주제를 이야기했고 그날 먹는 음식에 집중하면서 지친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이 친구가 참 이상한 게 하나 있었다. 나에 대해, 우리 가족에 대해, 우리 회사에 대해 전혀 묻지 않는 것이었다. 보통 30대가 넘는 어른들의 연애는 서로의 대한 정보 확인을 중요시한다. 막연히 좋아서 하는 연애는 20대에 해봤다면, 세상에 눈을 뜬 30대가 되면 결혼에 가까운 이성을 만나길 바란다. 그래서 확인한다. 어떤 집안인지, 종교는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연봉은 얼마인지. 그런데 나와 연애하는 이 친구는 1년간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를 않았다. 물론, 나도 묻지 않았다. 한참 사업에 집중하던 서로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마음이 같았나 보다. 함께 있기만 해도 위로가 되었고 결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을 하나 했다.


“지금까지 1년은 20대의 연애를 했다면, 앞으로 1년은 30대의 연애를 해볼까?”

셀러리맨으로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지와 가족을 늘 뒷바라지해주신 어머니, 대학 졸업 후 다닌 첫 직장을 10년을 넘게 다니고 있는 착실한 여동생. 나는 오래전부터 행복한 우리 가족을 위해 정말 좋은 식구를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을 생각한 사람이 우리 집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이젠 직접 물어보기로 했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그 친구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심지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와 나의 빚까지 모두! 처음에 내가 이 친구를 만나면서 결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사실, 이 친구는 나보다 더 유복한 집안에 본인도 사업적으로 성공해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여자가 나를 좋아할 수 있겠나. 결혼은 에이, 안되지.


하지만 이야기할수록 비슷한 면이 너무도 많았다. 경상도 집안의 부모 아래서 자라면서 먹어온 음식과 무뚝뚝한 아버지, 수다스러운 어머니, 20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하면서 했던 수많은 도전으로 본인 살고 싶은 뚜렷한 생각들까지 모든 부분이 나와 너무도 닮아서 너무 놀랐다. 천생연분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멀리 있었지만 너무나 닮은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 따뜻한 가정에서 배운 긍정적인 배려심은 늘 서로를 편안하게 했다.


“이 여자다. 아무리 찾아봐도 헤어질 이유가 없네?”

이렇게 계속 연애할 거라면 차라리 결혼을 하자. 연애한 지 2년이 되었을 때 프러포즈를 결심했다. 나의 빚 5억과 통장에 있는 전재산 300만 원은 중요하지 않았다. 집을 구하고 결혼식을 올리고는 그다음 문제다. 이 친구를 잡아야 했다, 물론, 이 무렵 지인에게 추천받은 주식에 넣어놨던 전재산 300만 원이 1,000만원이 되면서 나의 프러포즈 계획은 좀 더 나아졌다. 친했던 영상회사를 운영하는 형과 나의 지인들에게 나의 계획을 말했고 선뜻 도와주면서 30명가량이 프러포즈 당일에 모였다. 무려 일 년 중 가장 중요하다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계획은 이렇다.

1. 뉴욕 10대 화가가 내 지인. 한국에서 작품전을 연다

2. 잠깐 가서 인사하고 크리스마스이브를 멋지게 보내자!

3. 미술관에 도착 시 방송사 인터뷰를 하고 있는 뉴욕 10대 화가!

4. 올해 가장 뜨거운 작품을 마지막으로 소개!

5. 연애 중인 우리의 사진이 짠!

6. 그리고 불이 꺼지며 2년간의 추억의 사진이 지나가고!

7. 멋지게 내가 등장하며 프러포즈 반지를 건넨다.

8. 손님으로 가장한 지인들이 박수를 치고 축하한다

9. 본 장면을 생중계로 여자의 지인들에게 모두 전송되어 축하 문자를 받는다

10. 감동한 여자 눈물을 펑펑 흘린다.

한 달을 준비했다. 어차피 지금 가진 돈 1,000만 원으로 집도 못 구할 바에 1,000만 원짜리 반지를 사버렸다. 지인들도 엄청난 장비와 준비로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도와줬다. 물론 프러포즈는 성공이었지만, 당황한 그 친구는 눈물은커녕, 평생에 한번 프러포즈받는 날인데 입고 온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생중계로 나가면 어떻게 하냐 등 핀잔만 줬지만 오히려 깜쪽같이 속였다는 것에 나는 크게 만족했다. 내 방식대로 프러포즈를 했다면, 그 친구는 그 친구 방식대로 나에게 답변했다.


“그래, 프러포즈받을게. 결혼은 2년 뒤에 하자!”

너무 멋있어. 보통 프러포즈받으면 바로 결혼식 하지 않나?


양가 어른들을 만난 후 다행히 결혼은 1년 뒤에 결혼하기로 했고 가진 돈을 반지 사느라 몽땅 다 써버린 나는 프러포즈 후 6개월 뒤 회사를 매각하면서 생긴 돈으로 모든 빚의 정리와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집, 그리고 결혼자금을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해결했다. 많은 돈과 높은 명성의 집안과 안정적인 수입을 벌 수 있는 직장을 다니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은 지금의 아내는 높은 안목(?)으로 나와 함께 얼마 전 나은 첫때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결혼은 참 힘들다. 집안의 환경도 중요하고, 얼마나 버는지, 얼마나 가졌는지, 이성으로 느낄만한 외모와 말투까지 모든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자라온 환경이 비슷한 사람은 추천하고 싶다. 결혼은 결혼식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 우리에게는 함께 기뻐하고 위로하며 걸어갈 친구가 필요하다. 평생 살아온 방식을 누굴 만난다고 바꾸기는 쉽지 않다. 우린 가끔 주변에서 경제적인 조건의 남자를 고르라고 듣거나 반대로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여자와 결혼하라는 식의 조언들을 듣는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외모도 바뀐다. 유일하게 바뀌지 않는 부분은 최소한 20,30년간 살아온 그 또는 그녀의 환경에서 만들어진 생각과 태도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은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꿀팁을 하나 전수하겠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만난다면, 꼭 장모님을 만나봐! 그게 결혼 후 너의 아내 모습이야!”

(선배 말 듣고 실천해 봄. 검증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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