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그리는 유화 #3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회화를 전공하진 않았고
회화를 전공하였어도
가끔씩
그림을 그리는 사람보단
디자인을 전공했어도
오히려
매일매일 그림을 그려냄으로
물론 그것이 일러스트이던 디자인 샘플작지이던
유화이던 ...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말할수 있다
몇해전
아는 언니의 빈집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덕에
무기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무시무시하게 더운 여름날
에어컨도 ..선풍기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휑한 그 집을
생애 처음으로 혼자사용할수 있게 되었다
휴지한장 ..물컵하나 없어
입주첫날부터 급하게 큰일을 보고난후
엄청나게 당황했던 기억은 있지만
나의 첫 작업실이라는
설레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던
오롯이 홀로 하루라는 공간을 꽉채운
소중한 장소였다
정확히 아침 아홉시면
그 동네 작은까페에 들러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스콘하나를 사들고서
언덕까지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 오른탓에
온몸에 흠뻑 흘린 땀을 개운하게 씻어낸후
수건한장을 대신하여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닦고서
그곳에서의 비밀스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작은 의자하나
이젤..캔버스
화구통
돗자리
생수한병
아이스아메리카노
스콘한조각
작업실이라는 이름의 비밀아지트에는
생명있는것은 나하나뿐이고
공간을 차지하는 무언가는
나의 몸뚱이를 제외하곤 이것이 전부였다
그땐
그 좋아하는 음악도 일부러 찾지않고서
고요함이상의 적막함을 즐겼던것 같다
두어시간마다 울리는
집주인 언니와 남편의 전화벨소리가
나의 숨소리를 제외하고는
온전하게 들려오는
유일한 소리였으니까
종일 ..스콘한조각에도 포만감이 돌고
얼음이 녹아 점점 ....옅어져
결국 맹탕이 되고마는 아메리카노는
그동안 내 몸둥아리 속에 응어리져 있었던
잡스러운 생각과 쓸데없는 걱정들을
함께 희석시켜주고 있었다
엄청나게 집중하였고
또 엄청나게 진실했던 순간이였다
미지의 공간으로 홀로 떨어져 나와
어떤 무언가에 열중했던적이 과연 있었던가?
아마 태어나고서 처음이라 해도
틀린말이 아닌듯 하였다
더군다나 그 특별한 ..하루가
단 하루가 아니라 적어도 몇달동안
이렇게 지속될거라는 사실앞에선
가만있다가도
"꺅!!!!"
또 조금있다가
"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만큼 흥분되는 일이였다
십수년을 한 회사에서
밤낮을 모조리 투자하여 달려내고서 얻어낸
달콤한 삼개월의 휴가.. 그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도 더웠던 여름날...
모조리 그림그리기로
활활 ..태운것이였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진정성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던적이 있었다
그이후로 몇해를 한결같이 보낸후
이제는 ...
감히 말할수 있을것 같다
놓여있는 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것을 위해 공들인 시간이라고 ....
나는 드디어
11월에
첫 전시회를 한다
비록 개인전도 아니고
큰 갤러리도 아니지만
진정성 하나는 자신있으므로
모두를 초대하고 싶은 마음에
벌써부터 사춘기 소녀처럼 ... 설레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