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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Dec 22. 2016

서른 최고의 난제, 결혼

내가 정말 결혼을 하고 싶은걸까



 스물일곱부터 올해 여름까지 가장 큰 고민은 '결혼'이었다. 이십대 후반에는 의무감으로, 스물아홉에는 초조함으로, 그리고 작년과 올해는 '뭐라도 해봐야지'하는 마음에.


 이십대 후반에는 만나던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결혼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 받았고, 그 이유로 싸웠다. 그때는 결혼을 '인생의 완성'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결혼했으면 나는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남자와 헤어졌고 초조한 마음에 소개팅도 하고 선도 봤다.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튼 노력을 안한건 아니었다. 열심히 연애지침서를 읽고 나름 외모에도 신경을 쓰기 위해 난생처음 피부과도 다녔으니까. 지금도 그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기간동안 나는 열심히 주위에 '결혼하고 싶다'고 광고를 하고 다녔다.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투정도 하고, 결혼하는 선배나 친구들을 부러움 가득담아 축하해줬다. 그러나 솔직히, 별로 부럽지 않았다. 결혼식에서 행복한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말 미칠듯이 부러울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 감정이 없는 내 모습에 놀랐다.


나는 정말 결혼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회사에서 제일 좋아하는, 나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가 있다. 사실은 굉장히 어려워해야 하는 상사인데 철없는 나는,  신경쓰지 않고 하고싶은말을 한다. 같이 출장을 가던 그 날도 결혼하고 싶다고 혼자 징징거렸더니, 듣는둥 마는둥 스마트폰을 보던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생활에서 중요한 건 인내야. 행복하지만 행복한 시간만큼 인내해야 하는 순간도 비슷하게 필요해. 그래서 한사람과 평생을 산다는건, 니가 생각하는것처럼 가벼운 일이 아니야. 어차피 결혼하면 그 사람과 30년 넘게 살아야할텐데, 나는 니가 왜 이렇게 일찍 결혼을 하려고 아둥바둥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변덕이 심하고 인내심이 없는 편이다. 결혼생활을 오래한 선배가 그렇게 말하는걸 들으니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다. 결혼은 한번 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인것이다. 돌이킬 수 있지만 그건 꽤 큰 댓가를 치뤄야한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했던 모든 선택중에 가장 무거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여덟살엔 초등학교를 가야하고, 열네살엔 중학교를 가야하고, 열일곱에는 고등학교를, 스무살에는 대학을 가야했던 나는 서른이 되기전엔 취직을 해야했고, 서른넷이 되기전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까지는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했고, 그 이후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어도 선택할 용기가 없었다. 선택을 하지 않고 선택당하는것에 익숙했고 그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스물아홉, 겨우 턱걸이로 서른을 넘기지 않고 취업했던 나는 어쩌면 결혼도 제때 못할까봐 두려웠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 열심히 선을 보고 결혼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면 아마 몇년안에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결혼활동'이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그 행동들을 그만두었다. 선을 봐서 남자를 만나고, 모임에 나가서 남자를 유심히 보는 행동들이 스스로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걸 알았으니까. 더 정확히는, 사회에서 기대하는 대로 착착 인생을 진행시키던 것들이, 이제 늙어서 힘이 없어 하기가 힘들다.


 서른은 묘한 나이다. 아직 분명 젊은데도, 꺽인다는 느낌이 오는 지점이 있다. 해보고 싶은것들은 대부분 열정을 담아 이십대에 불꽃처럼 해봤다. 부모님의 기대와 사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도 해봤다. 미칠것 같은 사랑도 여러번 해봤고, 입을만큼 입고 먹을만큼 먹었다.


 어쩌면 그래서 아는걸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삶은 '열정'만으로 커버되지 않을 거란걸. 무리해서 결혼하면 분명 계속 무리해서 결혼생활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도 힘든데 결혼생활마저 무리해서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냥 정했다. 이렇게 지내다가 어느순간 '같이 살고 싶어지는'남자가 생기면 그냥 같이 살자고 해야겠다고. 거절당해도 할 수 없고, 그러다가 평생 결혼을 못해도 할 수 없지만 무리해서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지는 말자고.


 


 철없고 버릇이 없어 어른이 어렵지 않은 나는 꽤 나이와 지위가 있는 분과 이야기하다가 문득 결혼에 대해 묻는다. 오랜 결혼생활을 끝내고 재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어른. 결혼은 어떤거냐고 물어봤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해주신다.


"대화가 잘통해야해. 전의 부인하고는 대화가 잘 안통해서 5분만 이야기하면 싸우게 되니까 그냥 말을 잘 안하게 되더라고. 그러다보니 계속 오해가 쌓이고, 나중에는 힘들어진거지. 그땐 나도 굉장히 가부장적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밤까지 이야기를 해도 지루하지가 않아. 그러다보니 서운한것도 다 이야기하는 편이고. 잡혀사는것처럼 보여도 행복해."


 책에서도 여러번 읽은 적이 있는 말을 직접 들으니 '정말 그런가보다'한다. 역시, 결혼은 같이 있으면 오래 이야기할 수 있고 편한 사람과 해야 하는 구나 싶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결혼을 못해보고 죽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의 행복과 재미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결혼을 꼭 해야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내가 결혼을 못해도 안했다고 우길 수 있겠지.


 선을 보고 소개팅을 하며 적극적으로 결혼상대를 찾는 대신에 요즘은 '배우자 기도'를 한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무책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냥 내려놓고 신께 의지하기로 한다. 사실 학벌도, 돈도, 나이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내가 그동안 찾아해메던 덕목이 모두 이 기도문속에 있다는걸 알고부터 그냥 내려놓았다. 배우자를 주신다면 운명일테고, 안주신다면 그것또한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기로. 그렇게 정해버리니 마음이 정말 편하다.


 



미래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


하느님,

어느곳엔가 있을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제 운명의 그 사람을 지켜주소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이 힘겨워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자신의 인생을 밝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우리가 만나게 될 때 서로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자신의 삶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렇게 서로 준비하여 만나면 이 사람이 하느님께서 지켜주셨던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여주소서.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노력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삶에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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