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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Jan 07. 2017

험담, 그 무거운 존재에 대하여

내가 짧은 회사생활에서 배운 것들 - 1


 요즘은 회사생활을 20년씩 하신 분들이 존경스럽다. 두 가지 의미에서 존경스러운데, 하나는 그 오랜 시간을 이 힘들고 괴로운 '조직'속에서 버텨왔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만의 삶'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후자는 반어법.


 누군가 내게 '너는 짧은 회사생활 동안 무엇을 배웠니?'라고 묻는다면 3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로 말의 무게에 대하여, 둘째로 사람은 자신이 맺은 인연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 세 번째로는 넋 놓고 있다가 길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인 말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아직 회사생활을 4년 정도밖에 하지 않았지만, 조직이란 기본적으로 말이 많다. 그리고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할 일은 말밖에 없으므로 더 심해진다. 말들은 넘쳐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말들은 출처를 잃은 채 유령처럼 떠돈다. 그리고 자신의 입 밖으로 나간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거기까지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나 역시 처음 회사생활을 할 때 너무 어렵고 힘든 상사를 만났기에 사람들에게 그 상사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다녔다.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그 팀에 더 오래 있다가는 사표를 낼 것 같았으므로, 그리고 대부분의 구성원들에게 이미 공감을 받는 상황이었으므로 거리낌이 없었다. 사실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내 죄를 달게 받겠다는, 값을 치를 테니 팀을 제발 옮겨달라는 계산도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팀에서 벗어나 회사에서 제일 평이 좋은 팀장님 밑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값은 치러야 했다. 내가 예전 상사를 욕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타인의 험담을 즐기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험담을 하는 나를 환영했다. 그러나 새로운 팀에 적응하면서 나는 그들이 펼치는 험담의 세계가 부담스러워졌고,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부메랑은 돌아왔다. 설상가상으로 조직 내의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한 나는 그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었다. 나는 그저 열심히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권력에 아부하는 변절자'의 이미지가 되어있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나 해서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했지만 애초부터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는 지나치게 순진했고, 조직 내 사람들의 욕망과 질투를 이해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했다.


 나에게 따뜻했다가, 순식간에 차가워진 일부의 사람들은 '남의 험담'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거의 모든 조직 내 사람들에 대한 험담을 즐겼지만, 나에 대해서는 좀 더 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순진한 몇몇의 후배들이 그 말을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해주었고, 나는 투명(?)하게 그들이 하는 나의 험담을 대부분 전해 들었다. 멘탈이 약한 나는 자주 멘탈이 나갔지만, 다행히도 20대를 건너오면서 좋아진 회복 탄력성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작년 한 해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몇 가지를 깨달았다. 

1. 타인에 대한 험담은 그 사람에게 돌어간다.

2.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하고 험담을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순간 말이 옮겨지면서 그 무게는 예측도 못할 만큼 무거워진다.

3. 험담은 마약처럼 습관이 되고,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결속력을 다져주지만 타인을 재료로 삼은 결속은 결국 자신의 살을 갉아먹는다.

4. 험담을 전해 들은 사람의 분노는 내뱉은 말의 무게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5. 험담을 본인에게 전해주는 일은 결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남의 험담을 할 때 정말 피의 복수(?)를 꿈꾸며 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습관처럼 험담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별의 별것을 다 끄집어내어 험담을 한다. 그러나 말이 옮겨지면서 그 험담은 눈덩이처럼 살이 붙어 무게가 무서워진다. 다시 그 험담이 당사자에게 들어갔을 때 내뱉은 이는 이미 그에게 '부모를 죽인 원수'의 클래스다.


 나는 처음에는 나에 대한 험담만 하는 줄 알고, '아 그들은 나를 정말 싫어하나 보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과 대적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하고 고민했다. 진지하게 내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거나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기반성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과 관계없는 몇몇과 이야기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들'을 내가 싫어하는 강도만큼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니 그들은 거의 모든 사람에 대한 험담을 내뱉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한 해 동안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며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남에 대한 험담은 어떤 식으로든 손해 보는 짓'이라는 것이다. 한 때는 약자인 내가 '나의 부당함을 알리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그것도 정말 죽을 것같이 힘든 게 아니면 써봤자 손해. 한마디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 꼭 불륜 같다. 순간의 쾌락과 시원한 기분에 올인하기에는 너무 잃는 것이 많다. 그리고 험담은 습관이 되므로,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험담의 무거움. 이제 왜 그렇게 많은 책들에서 절대 타인에 대한 험담을 하지 말라고 한지 알 것 같다. 많이 한건 아니지만 나 역시 타인에 대한 험담을 했던 과거가 있으므로 그에 대해 반성한다.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내가 억울한 입장이라도 일단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굳이 다른데서 들은 그에 대한 험담을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 괜히 무거워진 험담을 본인에게 전하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 입히고 싶은 사람임을 반증하는 것. 그리고 그 험담을 전해 들은 본인은 '왜 굳이 이 이야기를 전하는 걸까'라고 진심을 의심하게 되므로. 패전 소식을 전한 병사는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새해에는 더욱 말을 조심해야겠다. 작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내게 말의 무거움을 알려주기 위해 일어난 일들이라고 생각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험담을 하고 다녔던 그 상사는 아직도 나를 싫어한다. 그때는 내가 생각이 짧았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나의 입장을 공감해준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그 상사의 편이 없으므로 그 상사 입장에서는 더 큰 상처일 수 있었으므로. 하지만 역시... 사표를 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조금 남아 있긴 하다. 어찌 되었든 새해에는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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