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뛰는건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마라톤대회의 메달이 좋아 5km짜리 마라톤을 가끔 나간다. 멀리는 못가고 근처에서 하는 마라톤만. 작년 가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몸을 움직이긴 싫으면서 결과물은 얻고 싶어하는 꼼수라고 할까.
대충 바지를 챙겨입고 주최측에서 준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간단히 점퍼를 입었다. 아직 추운 날씨라 반팔만 입기에는 서운했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체육관에 도착하니 다들 레깅스를 입고는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였다. 굉장하다 생각하면서 멀찍이 떨어져 마라톤이 마치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바라보기만 했다.
몸을 푼답시고 운동장을 돌다가 원반던지기 연습을 하는 여학생을 보았다. 코치는 남자 코치와 여자 코치 두명. 남자 코치는 잠깐 보다가 흥미가 없어졌는지 시선을 돌렸고, 여자 코치는 열심이었다. 자세를 더 낮춰야 한다는 말에 앳된 여학생은 다시 자세를 잡아본다. 던지는 모습이 시원하지 않다. 내 학창시절 기록을 떠올리니 아쉬움이 남는다. 한바퀴를 돌고 던지는데도 저정도라니. 그러면 안돼. 더 많이 나와야 입상할 수 있어. 속으로 생각하고는 다시 마저 트랙을 돈다. 가다가 괜히 멀리뛰기 경기장에서 멀리뛰기도 해 본다. 한창때인 소싯적에 비해 한참을 못미치는 기록. 그래, 나도 이제 늙었구나 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저 운동장을 돈다.
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온 팀장님과 이리저리 수다를 떨다보니 벌써 출발시간에 가까워졌다. 전문적으로 육상을 하는 학생들이 먼저 출발하고, 10분의 여유를 두고 일반인들이 출발한다. 3분 정도만 여유를 두어도 절대 겹치지 않을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출발 총소리와 함께 걸음을 옮긴다. 얼마 가지 않아 벌써 종아리에 알이 배기는 기분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뛸 수 있는 만큼 뛰다가 숨을 헐떡이며 걷는다. 그러다 좀 나아지면 또 뛴다. 그러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나를 앞질러 갔다.
초인적인 힘을 내어 와다다 하고 달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게 안된다는걸 안다. 평소에 꾸준히 연습해다면 더 잘 달릴 수 있었으리라.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니 끝이 보이긴 한다. 목이 타는 고통을 삼키며 개똥철학을 떠올린다. 그래, 인생도 이와 같아서 뭐든 다 할 수 있을것 같지만 실은 할 수 없다. 말도 안돼는 드라마나 초인적인 힘따위를 믿는건 성인이 되면서 끝냈어야 해. 왜 그러지 못하고 실력을 쌓아오지 않았을까. 그게 나만의 일인가 어디. 언젠가 어떤 일로 인생이 한방에 역전되리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게 사람이다. 그런건 없어.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는건 아무 도움도 안된다. 관념과 말로만 떠돌던 진실이 내 몸안에 들어와 박혔다. 그게 이번 마라톤을 하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이랄까.
같이 간 팀장님과 맛있는 점심을 먹고 집에 와 방을 정리한다. 잠깐 회사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또 집안일을 했다. 미루지 않는다. 미뤄서 되는건 아무것도 없다. 잘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냥 일단 하면서 나가는게 중요해. 그 흔하고 흔한말이 드디어 내 것이 되려나. 말은 가벼워서, 아무리 되뇌어도 공염불처럼 흘러가곤 한다. 그래도 계속 말하다보면 언젠가는 내것이 되는건가. 오랜만에 쓴 다리가 욱신거린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후회없는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