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시골로 가면 할 수 있는 일
퇴직하기 6개월 전, 집으로 돌아가면 뭘 하고 살지 꼼꼼하게 고민했다.
그 당시 월급은 220만원. 연말에 성과급과 연차수당으로 300만원을 더 받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돈이 아니었다. 거기서 점심저녁을 사 먹고 월세도 내고 나면 한달에 100만원을 저축하기도 버거웠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면 월세와 밥값은 해결되니까, 한달에 120만원정도만 벌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이 잘 안풀릴경우를 대비해 한달에 100만원을 받을각오도 했다.
한달에 100만원.
그래. 뭘하든 한달에 100만원을 못벌까.
농사 품을 팔아도, 농사를 직접 지어도, 공공기관에서 알바를 해도, 편의점 알바를 해도 100만원은 벌것 같았다. 정 안돼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되니까. 공공기관에서 4년가까이 쌓은 경력이 있으니 어떻게든 계약직이라도 전전할 수 있겠지. 그러다가 진짜진짜 안 풀리면 공무원시험을 보려고 했다. 시험이 쉽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이로 차별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나마 내가 재주있는건 공부니까.
1년이 지난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한달에 300넘게 받는 직장인이 되었다.
이전직장의 경력을 살려 재취업이 되었는데, 2년 계약직이긴(큰 문제없으면 연장도 쉬운!) 해도 월급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꽤 만족스럽다. 하는 일도 내가 좋아하는 일. 붙고 나서 '나는 정말 운이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근데, 정말 내가 운이 좋았나?
다시 필름을 돌려 회사를 그만두기 전인 1년 6개월 전으로 돌아가보자. 퇴사를 앞두고 내가 염두해둔 진로는 3가지였다. 첫째, 고향 근처의 공공기관에(안되면 공무원) 입사한다. 둘째, 농사를 짓는다. 셋째, 창업을 한다.
그리고 퇴사후, 나름은 도전해보기도 하며 이 세가지의 가능성을 꼼꼼이 따져보았다.
첫째, 공공기관 입사.
경력을 살려 공공기관에 입사했다면 좋았겠지만, 내 고향 근처에는 공공기관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정규직 시험을 보았지만, 꽤 경쟁률이 쎈 곳이었기에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졌다. 계약직도 원서를 냈지만, 아직은 배가 불러서 면접을 안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맞지 않는 회사여서 당연하고 다행인 결과였다.
두번째, 농사짓기.
많은 사람들이 시골로 간다고 하면 농사를 생각하지만, 농사는 어느정도 돈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고 돈이 없다면 최소 2억은 대출 받을 수 있어야 제대로(소소하게 시작하고 싶다면 돈이 적어도 괜찮지만 수입은 기대하지 말자) 할 수 있다. 농기계가 얼마나 비싼지 안다면 깜짝 놀랄 텐데, 농기계를 빌린다고 해도 꼭 들어가야 하는 돈이 한두푼이 아니다. 다행히 요즘 많은 지자체에서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지만 나는 그 정도로 농사에 욕심이 있던것이 아니라서 패스.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계셨기에 나중에 물려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일단 이쪽은 놔두기로 했다.
세번째, 창업.
시골은 시내라해도 월세가 저렴하다. 서울과는 당연히 비교가 되지 않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곳도 30만원정도면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요즘은 청년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지자체의 투자가 많아서, 1인당 3천만원까지 지원해주는 사업에 선정되면 인건비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자금을(월세는 당연하고, 전화비까지도!) 3천만원 한도로 충당할 수 있다. 서울도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있다고 해도 경쟁률이 너무 심할테니 이런 사업들은 충분히 장점이 많다. 나도 도전해볼까 고민했지만, 리스크를 싫어하기도 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 포기했다.
역시. 잘하는거라고는 그나마 공부고 비슷한 경력도 있으니 공무원쪽이 가장 끌렸다. 때마침 국가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참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공무원시험을 봐야겠다고 다짐하고는 공부하기를 2개월, 제대로 공무원 시험을 보기도 전에 상당히 마음에 드는 좋은 조건으로 다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와, 나 진짜 운이 좋은데?
그때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운이 좋았던게 아니라 시골은 일자리도 적지만 청년도 적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거다. 서울에 일자리가 많다고해도 그만큼 고스펙의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에 기회를 잡기 쉽지 않지만, 여기는 블루오션 일자리가 쏠쏠하게 숨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청년들을 유치하기 위한 시골 지자체들의 노력은 상상이상이어서, 숙소(?)나 집까지 지어주며 창업을 하려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다시 돌이켜 퇴사직전의 나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골에 '일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를 크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공공기관, 관공서(지자체), 농업법인 등등 많지는 않아도 괜찮은 일자리가 분명 있음에도 고려하지 않거나 가능성을 축소시킨다. 그러나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시골에는 젊은 사람이 적고 특히 도시에서도 뒤지지 않는 스펙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이 적다. 그리고 창업을 한다해도 서울보다 훨씬 지원을 잘해주고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그리 크지 않다.
이 세가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을 봐도 알 수 있다. 시골안에서도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은숙(진기주), 부모님의 농장을 물려받는 재하(류준열, 사실 농사는 땅과 기계만 물려받아도 성공할 가능성이 꽤 높다. 그리고 대기업을 때려치고 내려오는게 많은걸 포기한 것 같지만 자산을 물려받은 젊은 농부가 버는 수입을 안다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가 그 예다. 영화에는 어떤 일을 하는지 나오지 않지만, 아마 혜원은 돌아와서 공무원(지방은 합격선이 수도권에 비해 낮은 편이다)이 되었거나 까페를 차리지 않았을까?
"말이 쉽지 현실적이지 않은 일 아니냐"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실적이라는건 뭘까. 많은 도시인들이 귀촌을 꿈꾸면서도 '현실'을 이야기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지금 가진것을 포기할 수 없다'라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현실을 말하는 이들은 대부분 지금 가진것이 많다는 뜻이겠지.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시골로 돌아오는 일은 너무너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가족과 인맥이 있다는건 둘째쳐도(인맥은 와서 만들어도 된다. 10년넘게 떠나있던 내 고향에 남아 있는 인맥은 많아봤자 10명 이내다. 그마저도 아주아주 어색한... 그리고 지금은 고향이 아닌 곳에서 직장을 다니는데도 불편하지 않다) 도저히 서울에서 집을 살 자신이 없었다. 100만원씩 모아도 10년은 모아야 가까스로 좁은 1억 5천짜리 오피스텔을 구할 수 있을텐데, 40이 넘어서도 작은 오피스텔에 살고 싶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시골에서는 1억 2천만 모아도 꽤 넓은 단독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난한 청춘'에게 귀촌을 적극 권하고 싶다. '아까운 청춘'을 가치를 알아주는 곳에서 썼으면 해서.
좁은 반지하방에서 사는게 지겹고, 매일 월세 나가는게 지겹고, 빡빡하게 사는것도 싫은 청춘이라면, 혹은 한번쯤 창업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도저히 자금이 모이지 않는 청춘이라면 귀촌을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자. 지금 지자체들은 청년을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이다. 서울에서 당신의 가치가 10이라면, 시골로 오면 최소 30이 된다.
시골은 텃세가 심하지 않냐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정 걱정된다면, 시골에도 아파트가 있고 원룸이 있다. '시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꼭 농가주택에 살아야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나도 지금 회사 때문에 원룸에 살고 있다.) 그리고 시내에 살아도 서울보다는 100배 이상 여유롭고, 조금만 걸어나가면 초록초록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참고 링크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사업(경상북도경제진흥원)_창업지원/1인당 연3천만원 지원
http://www.gepa.kr/contents/bbs/selectBbsView.do?menuId=93&bbsinfo_tcd=1&selectedId=1919266
전북 청년정착 지원사업(김제시청)_다분야 청년 정착지원/월 30만원
청년창업허브센터 입주자 모집(의성군청)_창업지원/숙소지원/1인당 연3천만원지원
http://www.usc.go.kr/news_participation/uiseong_news/notify_examination
완주군, 청년 농업인 경쟁력 제고사업 참가자 모집_농업인 사업비 지원/ 5천만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4126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