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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Jan 15. 2020

'나는 자연인이다'가 보여주는 욕망

욕망은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작년 봄의 어느 날, 불꺼진 방에는 커다란 티비가 혼자 떠들고 있었다. 엄마는 두 손을 베게삼아 그 불빛 속을 응시하고 있었고, 나는 이제 막 잠에 빠지려는 참이었다. 그때, 가물가물해지는 의식속에서 나는 엄마가 내 뱉은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듣자마자 깜짝 놀라 무슨소리냐고 말할 정도였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엄마가 보고 있던 프로그램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방송, '나는 자연인이다'였고 엄마는 그 방송에 나오는 자연인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머리가 뭔가에 맞은 듯 띵했다. 엄마는 결혼 이후 줄곧 40년 넘게 가게하나 없는 시골에서 사셨고 심지어 현재는 100m 이내에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곳으로 이사했는데 그게 자연인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뭐지....? 나는 그날 머릿속에 혼란이 찾아들어 잠을 깨고 말았다.


그 일은 '자연에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찬찬히 살펴보니 의외로 많은 이들이 그러한 욕망을 품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실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는게 어려울 뿐, 특히 시골 출신인 사람들 중에서 '은퇴하면 산에 들어가 살고 싶다','청송이나 봉화쪽에 물 맑은 산에서 버섯을 키우며 살고 싶다'는 꿈을 품은 이들이 많았다. 조금 더 거슬러 생각해보니 스무살 언저리에 만났던 남자친구도 자신은 절대 도시생활을 할 수 없다고 했었고 고향에 사는 대다수의 어르신들이 '서울은 사람 살 곳이 못된다' 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서울의 복잡함이 싫다는 정도로만 해석했던 그 말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시골의 단순함을 포기할 수 없다는 좀 더 적극적인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재작년 가을, 감따다가 예뻐서 찍어본 꽃


  나는 왜 욕망이 한쪽으로만 흐른다고 생각했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웃긴 일이었다. 번화한 도시에서 야심을 품고 살아가는 욕망만 욕망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내려놓은 상태를 시골살이라고 생각하는, 상당히  편협한 우를 범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제서야 대학생때 읽었던 책의 구절이 이해가 갔다. 그 구절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정민 교수님의 '청상'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이란 것에는 대저 두 종류가 있다. 외직에 나가서는 대장군의 깃발을 세우고 어여쁜 아가씨를 끼고 논다. 내적으로 들어와서는 높은 수레를 타고 비단 옷을 입고서 대권 문으로 들어가 묘당에 앉아 사방을 다스릴 계책을 듣는다. 이런것을 일러 열복이라 한다.


깊은 산속에 살며 거친 옷에 짚신을 신고 맑은 못가에서 발을 씻으며 고송에 기대 휘파람을 분다. 집에는 좋은 거문고와 고경을 놓아두고, 바둑판 하나와 책 한 다락을 갖추어 둔다. 마당에는 백학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꽃과 나무 및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북돋우는 약초를 심는다. 이따금 산승이나 우객과 서로 왕래하며 소요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세월이 가고 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조야가 잘 다스려지는지 어지러운지에 대해서도 듣지 않는다. 이런 것을 두고 청복이라 한다.


사람이 이 두가지 가운데서 택하는 것은 다만 그 성품에 따른다. 하지만 하늘이 몹시 아껴 잘 주려 들지 않는 것은 바로 청복이다. 그래서 열복을 얻은 사람은 아주 많지만 청복을 얻은 자는 몇 되지 않는다.


-정민, '다산 어록 청상' 중에서(다산 정약용의 글)

 

다산의 말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이면서도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사람들의 욕망은 실제로 어느 한쪽이 아닌 두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다만 도시를 향하는 욕망은 목소리가 크고, 자연을 향하는 욕망은 그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을 뿐이었다. 나는 왜 자연을 향한 욕망을 욕망의 부재라고 생각했을까? 이게 다 미디어에서 '욕망을 버리고 떠난' 이로만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것마저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니!


사회적인 이유를 찾아본다면,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이촌향도 현상이 심화된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만 해도 시골에 남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남은 이들'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도시로 떠나지 못하고 남은 젊은 이들은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으니 아직은 그 정서가 남아 있기 때문인가?  하지만 도시가 빠르게 변한 만큼 시골도 너무나 변해서 지금은 '물려받을게 많은 청년'들이 농촌사회에 자리잡는 중이다. 나는.... 나는 물려받을 게 없어서 아직도 직장에 다니고 있고..(눈물) 어쨌든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도시로 몰려갔으니 자연스럽게 시골생활을 욕망의 부재로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동네에서 찍은 민들레 씨. 빛이 좋아서 찍었는데 카메라가 나빠서 이쁘게 나오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지금은 '용기있고 꿈있는' 소수의 도시인만이 시골을 택한다. 물려받을게 많아 되돌아온 젊은이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시골로 와 기회를 찾는건 정말 큰 결심을 하고 내려오는 이들이다. 성실하고 머리좋은, 그리고 무엇보다 '허세'라곤 조금도 없는 청년들이 블루오션을 알고 남보다 빠르게 자리잡아 지역의 일감들을,  그리고 돈을 쓸어간다. 도시에 있을 때는 막연히 '이렇겠지...'하던 허상들이 하나둘씩 깨어진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렵다. 그렇게 오랫동안 시골에서 살았건만 이렇게까지 무지했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새롭고 기대된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리고 앞으로의 내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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