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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Jan 14. 2020

무례하지만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상냥하지만 선을 긋는 사람들



단풍이 한창이던 가을, 바삭거리는 낙엽길을 걷다가 문득 이곳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대학교와 직장의 인간관계가 모두 그 결을 달리했기에 애당초 비교해 볼 마음조차 먹지 못했지만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이 3개월을 넘어가며 자연스럽게 도시 직장인과 시골 직장인의 인간관계를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차이를 제쳐두고 일반적인 분위기를 봤을 때, 이곳 사람들은 무례하게 곁을 내어주는 반면 도시 사람들은 상냥하게 선을 긋는다.  대학가서 지방 친구들이 많이 하던 이야기가 '도시애들하고는 아무리 가까이 지내도 무언가 하나 빠진것 같다'였는데, 그 느낌을  '곁을 주지 않는다'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저 아이가 나와 연락을 끊어도 저 아이는 쿨하게 다음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느낌. 내가 퇴사하면 저 사람은 길거리에서 만나도 모른척하고 지나칠것만 같은 느낌말이다. 물론 실제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가 끈끈하지 않기도 하고.


반면 시골에서는 자주 무례함을 겪는다. "결혼해야지"부터 시작해서 왜 남자친구가 없는지, 저 남자는 어떤지, 애는 언제 낳을건지 등등 도시에서는 듣기 힘든 이야기들이 매일 쏟아진다.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 "노처녀가 결혼생각이 없다는건 거짓말"이라는 답변이 돌아오니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를 지경. 결혼을 못해 포기했다고 말해도 그러면 안된다고 한다.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빨리 결혼하고 애 낳는것 뿐이다. 나를 괴롭히려 한다기보다는 주류와 다른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정이 많고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장점에 대한 댓가라고 할까. 그리고 회사내에서의 상명하복도 도시에 비해 확실한 편이다. 20대에는 이게 무조건 나쁜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크게 불합리한 일이 없어 부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느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에게 어느쪽을 고를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않고 무례하지만 곁을 내어주는 쪽를 고르겠다. 전자에 기대기엔 내가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고, 상처를 더 많이 받은 것도 마지막에 일정한 선이 존재하는 쪽이었으니까.


한때는  개인적인 조직이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그 반대여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은 개인적인 조직이 훨씬 컸다. 사람이란 결국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신뢰도가 사람 사이의 긴장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했다. 내가 겪은 조직 분위기를 예로 들자면, 사적인 교류가 적고 점심도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곳이 덜 피곤할 것 같은데 오히려 뒷담화도 훨씬 쎄고 협업도 어려웠다. 반면 무조건 점심은 다 함께, 약속있을 때만 따로가고 사적인 침범이 훅훅 들어오는 분위기에선 뒷담화도 적고 협업도 쉬웠다. 그리고 개인적인 분위기의 직장에 뒷담화가 없다 해도 하루종일 함께하는 관계라 생각하면 어쩐지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자주 쓰는 언어도 영향을 미친다. 전 직장에서는 친해도 무조건 '여름씨'라는 호칭이었다면  여기서는 조금만 친해도  '여름아'다. 특히 직속상사라면 무조건 자신의 부하직원을 친근하게 부른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가 나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팀을 '식구'라고 부르는만큼 밥을 먹었는지도 반드시 챙긴다.  옆의 팀에 사람이 없으면 '이 집은 다들 어디갔나'라고 말한다. 만일 인사이동이 생겨 우리팀 직원이 타 부서로 이동하면 떡을 박스로 주문해 단체로 몰려가서는 잘 봐달라고 부탁한다. 처음 접했을 때 다소 충격적이고 신기한 풍습(?)이었다.


나와 친한 상사는 단호한 어조로 '사람관계가  되어야  일도  된다'라고 했고, 그 말에 '조직마다 우선하는 가치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장단은 있겠지만 나도 상사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혼자 일을 하지 않고 모여서 일하는 이유는 서로 도와서 잘 해결해 나가는게 유리하기 때문이니까. 도시에서 만난 직장 사람(주로 스펙좋은 분들이 모인 회사를 다녔다)들은 분명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났으나 협업이 쉽지 않았고, 시골에서 만난 직장 사람들은 개개인의 스펙은 중상 수준이나 협업이 쉬웠다. 비슷한 조건으로 일을 시작했다면 아마도 후자가 아웃풋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일은 하면 된다. 시간을 더 내서라도 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이 힘든건 어찌할 수가 없다. 조직에서 사람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는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도 돌아보게 된다. 출근을 준비하며 아침부터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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