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대체로요.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보면, 편의점 도시락을 뱉던 혜원은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뜨끈한 배추장국을 끓여 먹는다. 그리고 왜 돌아왔냐는 친구의 질문에 배가 고파서 돌아왔다고 대답한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이 감성을 이해하는 일이 자연스러웠지만, 도시에만 살던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을 한번쯤 할것 같다.
시골에선 진짜 영화처럼 그렇게 해 먹어요?
내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때, 한마디로 대답하면 "케이스바이케이스,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다. 지극히 원론적인 대답이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물론 나는 지금 읍내에 살고 있어 상황이 좀 달라졌다. 하지만 읍내가 아닌 면단위의 진짜 시골 이야기가 더 궁금할테니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재작년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그러니까, 아래에서 말하는 시골은 동이나 읍이 아닌, 가게 하나 찾아보기 힘든 면단위 기준이다.)
나는 적어도 먹거리만큼은 시골이 절대 우위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돈없는 젊은이가 도시에 살면 메뉴선택이란걸 하기도 힘들어지고, 보통 삼각김밥이나 라면, 혹은 값싼 프랜차이즈의 우동이나 떡볶이 같은 것들을 자주 먹는다. 편의점 도시락은 '그나마'건강을 생각해 선택하게 되는 메뉴.
영화에서 혜원은 떡부터 막걸리, 곶감, 파스타 같은 것들을 만들어 먹는다. 사실 이 메뉴들은 도시에 살아도 마음만 먹으면 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고, 시골에 산다고 해도 귀차니즘이 심하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서울에선 이 재료들을 영수증에 찍히는 '돈'을 지불하고 가져온다면, 시골에서는 내가 직접 수확한 작물로 해 먹는다는 것. 그리고 조금 전문적으로 말하면 시골에서는 자본의 개입이 적다는 것이다.
"그게 뭐?어차피 요리를 하는건 똑같은거 아니에요?" 하고 물을지 모르지만 막상 겪어보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단감과 홍시, 그리고 으름. 으름은 굉장히 달고 진한 맛을 낸다.
우선, 요리를 하기 위해 장을 보면 돈이 아까워서 망설이게 된다. 그 돈으로 차라리 밥 한 그릇 사먹는게 싸게 먹히기도 하고 막상 요리를 할때의 그 귀찮음이란.. 나가면 널린게 밥집이고 편의점인데 굳이 요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면단위의 시골에 살면 외식이 더 어렵다. 일단 차를 끌고 시내까지 나가야한다. 그러느니 내가 밥을 해 먹고 말지, 이 마인드가 훨씬 강하다. 게다가 주위에 널리고 널린게 싱싱한 채소이다보니 외식은 꽤나 돈아까운 일이 되는 것이다.
요리를 하겠다 맘 먹고 채소를 준비해보면, 대부분은 자신이 직접 수확했거나 이웃에서 준 것들이다. 시골에서는 자신이 경작하지 않는 농산물을 이웃에게 받고, 또 반대로 자신이 경작한 농작물을 이웃에 주는 형태가 흔하다. 그 과정에서 정도 오가고 더 친해진달까. 아무튼, 자신이 직접 키운것이든 받은 것이든 싱싱하기 짝이 없는 채소와 과일을 처리하느라 요리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그러면 버려야 하니까.
그러다보니 인스턴트나 마트에서 사온 식재료 보다는 시골에서 갓 딴 싱싱한 재료를 사용할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는 영화속의 혜원처럼 다양한 요리를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차니즘이 심하다면 수시로 시내에 나가 사먹는 선택지가 있기 때문. 물론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긴하다.
영화속에서 혜원이 요리하던 음식들을 보면, 반은 익숙하고 반은 낯선 것이었다. 일단 시골에는 오븐을 가진 가정이 그리 많지 않아서 오븐을 이용한 요리는 흔하지 않다. 감자빵 같은 것은 보통 사먹는다고... 크림브뤨레?라고 하던 푸딩이랑 오코노미야키도 시골에선 보기 어려운 메뉴. 하지만 막걸리를 담가 먹는 사람은 꽤 많다. 곶감은 말할 것도 없고, 배추전이나 수제비는 자주 해 먹는 편. 그리고 떡도 의외로 직접해먹는 메뉴중 하나.
쑥, 냉이, 달래는 봄이 되면 지천에 널렸고 두릅은 흔하진 않다. 이 외에도 시골에는 내가 직접 수확해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 산과 들마다 널려있어서 굶어죽으라고 해도 그러기 힘든 곳이다.
-상품가치가 없어서 모두 버리는 감. 깍아서 곶감으로 말려도 전혀 무리가 없는 좋은 감들이다.
게다가 시골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버리는 과일도 부지기수라, 조금만 발품을 팔면 얼마든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시골사람들은 대부분 낙과나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과일을 직접 주우러 다닌다던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아도 이웃에서 한박스씩 주고, 그것도 다 못 먹으니까....
시골과 도시의 차이는 라면을 끓일때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다. 지금 주방에 라면밖에 없는 상태를 가정해보자. 도시에 산다면 주섬주섬 옷을 입고 편의점에 가서 대충 곁들일 재료를(아마도 싸고 맛있는 햄이나 달걀종류) 사오거나 그냥 라면만 끓여 먹겠지. 하지만 시골에 산다면 마당 밖으로 나가 호박, 파, 고추, 깻잎 따위를 따올 수 있다. 추운 겨울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집에서 이정도는 구비하고 있으니, 어려운일도 아니다. 우리집에 없다고? 그렇다면 친하게 지내는 옆집 텃밭에서도 따올 수 있다. 평소에 이야기를 잘해놓으면 된다.
시골에서는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재료가 지천에 널려 있기 때문에, 요리할 때도 창의성을 발휘하게 되어 즐겁다.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고 간단한 음식을 해도 맛있다. 예를 들어 된장국 하나를 끓이더라도 모두 갓딴 채소로만 채우면 서울에서는 절대 먹을 수 없는 맛을 낸다. 채소들이 정말 세포막(?)하나하나에 수분을 가득 품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갓 캔 감자는 껍질이 굉장히 얇아서 손톱으로 긁어도 슥 긁힐 지경인데, 그걸로 요리를 하면 당연히 너무나 맛있다. 이건 정말, 글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영화속에서 혜원이 배가고파 내려왔다는 말에서 알수 있듯, 시골은 식탁을 무척 풍요롭게 만든다. 그리고 반대로, 서울은 가난한이에게 잔인한 곳이다. 당장 돈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난한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굶지 않더라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돈이 없으면 굶는다는 불안이 항상 도사린다. 그래서 시골이 좋다. 적어도 굶진 않게 만드니까. 자연은 늘 그랬듯이 모든것을 내어주고 배고프지 않게 만들며, 가난하든 돈 많든 비참하든 기쁘든 구분없이 안아준다. 조금 불편해도 그 점은 참 안심이 되고 감사하다.
+덧붙이는 글
이번 봄, 몇 그루 뿐인 산딸기를 먹는 속도가 익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많이 버렸다. 아깝다. 시골에는 이렇게 버려지는 과일도 많다. 하지만 그걸 벌레도 먹고 새도 먹고 한다. 그래서 쓰레기가 되지도 않고 남은건 거름이 되기도 해 여러모로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