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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Oct 11. 2020

자연이라는 안정제

행복은 자주, 스트레스는 적게


 

 시골로 와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 '자연과 가까워졌다'는 점을 꼽고 싶다. 빌딩 숲이 아닌, 진짜 숲과 드넓은 들로 가득 채워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풍요로워진다. 그러다보면 가시같은 긴장감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눈녹듯 녹아버리고, 나는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한마리의 짐승이 된다.


 허덕인다는 느낌, 끌려간다는 기분, 끊임없는 비교와 미래에 대한 걱정도 이곳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매스컴의 영향도 도시에 비하면 미미하다. 이 곳 사람들은 드넓은 산과 들을 거닐며 자연과 리듬을 맞추고, 그 여유를 마음 속에 담은채 하루를 마무리한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분주함 대신 가만히 집중하며 해야할일을 해나가는 단순함이 일상을 지배한다. 도시에서의 여유로움과 시골에서의 여유로움은 강도나 빈도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런 안정감은 심리적 치유효과가 뛰어나 많은 불안과 부정적인 생각, 남들과 비슷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던 나의 상태를 크게 완화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입병에 알보칠을 칠하듯 빠르고 드라마틱하게 일어났다. 이곳은 아예 다른 세상이었다.  


 그래서일까? 도시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시골 사람들 중에서는 도시를 답답하다 여기는 사람이 꽤 많다. 대도시로 대학을 다니지만 답답함을 참지 못해 주말마다 집을 찾았다는 후배의 이야기나 서울에 가면 마음이 불편해서 못 견디겠다는 어른신들의 이야기는 나조차도 서울에 살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나는 자연인이다'같은 방송에서 속세를 떠난 자연인들이나 하는 말인줄 알았지, 이렇게 많은 지방인들이 공감하는 주제인지는 짐작도 못했다. 미디어가 알려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도시사람들이어서 지방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쉽게 알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대체 시골의 어떤점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걸까? 자연의 풍족함은 두말할 것도 없고, 복잡하지 않은 공간과 이웃과의 소통, 좋은 먹거리가 풍부한 일상도 한 몫 거든다고 생각한다. 물건으로 꽉찬 어지러운 방을 보면 마음도 편치 않듯,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도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지만 시골은 여유롭다. 나는 이 차이가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큰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주변 환경의 미니멀 라이프 같은거다.


 사람들 간의 정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시골인심이 예전같지 않다, 시골사람들이 더 하다는 말도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지방인들을 '원주민 부족'처럼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기대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지방인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예전과 비교해 정을 나누는 문화가 줄어들었다고 해도 도시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시골쪽이 정이  많다. 저변에 깔린 분위기는 개개인간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끼쳐서, 1대1의 관계에서도 확실히 덜 계산적이고 더 편안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민자체가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자연에서 금방 온 좋은 먹거리도 삶의 질을 높인다. 여기서는 굳이 마트에 들르지 않더라도 채소와 과일을 받는 일이 많다. 산지와 가까우니 선물이 자주 들어오는 것도 당연한 일. 우리 사무실은 철마다 지역 특산물이 냉장고를 채우고 사람들끼리 과일을 나누는 일도 잦다. 그리고 근처의 로컬푸드에 가면 생산자가 직접 내놓은 신선한 농산물을 아주 싼값에 살 수 있기 때문에 몸에 좋은 식품을 먹을일이 많아진다. 적어도 먹거리만큼은 건강하고 값싸게 먹을 수 있어 실질적인 삶의 질이 무척 높아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시골이 주는 안정감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줄이고 기력은 보충해주는'데서 오는듯 하다. 이 곳에서는 나를 번거롭게 하는 욕망들이, 쓸모없이 떠다니던 생각들이 음소거 버튼을 누른듯 말끔하게 정리된 기분이다. 그러다보니 편안한 행복은 자주 찾아오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확 줄었다. 다른건 몰라도 정신건강에는 시골살이가 특효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치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시골로 오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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