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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Jun 10. 2016

호모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의 현란한 구라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저/조현욱 역


읽으면서 계속 수년전 베스트셀러였던 [정의란 무엇인가] 가 생각났다. 얼마 전 헌책방에 가서 중고로 나온 이 책을 여러 권 봤다. 김영사가 화려하게 포장해 많이 팔린 책이다. 하버드대학 강의실의 표지 그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다 읽고 나서 새삼스레 김영사의 화장술에 감탄한 적이 있다. 책은 그런 속성이 있다. 본인이 다 읽기 전까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서평이나 추천사 대부분이 주례사와 유사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하나 제대로 읽으면 정의에 대해 통달하고 실천하는 시민으로 거듭날 것 같은 환상에 빠져 든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책은 없다. 좋은 책일수록 신중하게 표현한다.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으니 더 비우고 더 내려놓고 겸손하고 함께 가라고 한다.


와인 마시러 갔다가 소맥 폭탄주 여러 번 마시고 막걸리도 먹고 나중 끝날 때쯤 이미 맛이 간 레드 와인 한 잔 마신 기분이다. 뭘 마셨는지 모르겠다. 과음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니 기억이 희미하다. 술 마신 것은 맞는데 어느 술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물론 기억날 리가 없다. 짬뽕을 했으니. 대강 분위기만 흐릿하다.  


이 책도 그렇다. 참 많은 내용이 이 책 안에 있다. 하라리가 다루지 않은 세계사적 문제가 없다. 인지혁명에서 출발해서 농경사회의 시작과 의미, 자본/제국/종교를 거쳐 과학혁명에 이루기까지 세계사적 이슈가 다 녹아있다.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읽으면서 계속 리마인드 시켜야 했다.  책장을 넘기면서  “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결론 부분에 언급된 호모 사피엔스 하라리의 의 주장을 듣고 나니 참 허탈하기만 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서로 어울려 즐겁게 살아라. 농경 사회 이전에 그 유로운 삶으로 돌아가라.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다 (p130). 사기가 좀 더 세련화된 것이 국가. 사회, 종교, 자본, 제국이다. 이것들은 외형상 풍요와 안전을 가져다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폭압적 장치들이다. 우리 주변에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상상의 질서만 있을 뿐이다. 역사에 정의는 없다(p196). 중요한 것은 쾌락이다. 앞으로 인간은 또 어찌 될지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를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인공적으로 조작된 새로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나타나 미래가 불안해질지도 모른다. 불안한 미래에 희망을 걸지 말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


이 책을 안 읽어도 당연히 알고 있고 이미 얻은 결론들이다. 장편의 책을 다 읽고 나서 얻은 결론 치고는 너무 맥 빠진다. 하라리의 예측은 한 참 오랜 후에 일어날 이야기다. 시간적으로 오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우리 의식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불안한 미래"는 또 다른 상상의 질서일 뿐이다. 상상의 질서 "제국, 화폐, 종교"로 인해 이익을 얻은 존재들이 있는 것처럼 하라리는 넉살 좋은 구라로 '불안한 미래'를 만들었고 만들어진 '불안한 미래'를 통해 명성과 부를 얻었다. 하라리는 순수 호모 사피엔스가 맞다. 머리가 좋다.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다. 세련되어 보이는 구라를 통해 세계적으로 성공했다. 부럽기는 하다.


나중을 위해 몇 문장 적어 둔다.


(농경 이후 인간이 더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는 환상이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더욱 총명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P 124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P 124


(농업혁명은)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 (p 148)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나 반란이나 이데올로기에 시간을 그만 낭비하고 대신 우리를 정말로 행복할 수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에, 즉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을 조작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P 550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에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P553


인간의 역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동물들에게는 큰 불행을 야기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P 588


생물학적 존재가 상상하기 시작하면서 제도와 신화를 만들고 그로 인해 힘들게 살아온 이 오랜 비극에서 벗어나 이제라도 웃으면서 살아라. 인생은 짧고 우주는 무한하다,라고 호모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는 말씀하시었다.


인문학에 갓 입문한 사람들이 보면 무척 좋아할 만한 책. 마치 초창기 이문열의 소설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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