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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Aug 19. 2016

내러티브가 없는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근대문학의 종언. 가라타니 고진 저 / 조영일 역 | b (도서출판비)


“근대 문학의 종언’이라는 표현을 오래전부터 문학평론 여기저기서 본 적이 있고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존경심 어린 표현 또한 자주 접한 탓에 꼭 읽어 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고진에 대한 독해는 “네이션과 미학”부터 시작됐다. 그 책 읽고 오르가슴을 느꼈다. 4년 전 일이다. 지인 중의 하나가 이렇게 물어 온 적이 있다. “ 어떻게 책을 읽고 오르가슴을 느끼냐고? “ 읽어 보면 흥분된다는 것을 느낀다. 이건 경험해 봐야 한다. 세상에는 섹스보다 더 좋은 것들도 가끔 있다.


고진에 대한 두 번째 독해는 “세계사의 구조”였다. 터키 여행 시 내내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던 책이다. 고진 사상의 정수라 할만하다. 이제 세계 지성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니 그도 더 이상은 여한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고진에 대한 독해는 이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 고진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책 한 권 쓸 일이 생겨서 몇 권 읽어 보던 중에 고진이 눈에 들어왔고 “근대 문학의 종언”을 꼭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진이 생각하는 종언의 의미가 궁금했다.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근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고, 그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 특별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런 것이 이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p 43 “


“ 먼저 이 현상이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두겠습니다 – 중략- 아메리카 합중국에서는 훨씬 빨리 근대문학이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가 좀 더 빨리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p47 “


근대문학 = 소설은 공감의 공동체, 즉 상상의 공동체인 (근대) 네이션의 기반이 되어 왔고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 문학은 영구 혁명 중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 의 역할을 감당해 왔는데 이제 그런 의미부여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이미 네이션 = 스테이트가 확립되어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왔던 소설의 역할을 사라졌고 문학이 감당했던 주체성의 역할에 사람들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기반이 붕괴되고 역할이 소멸된 이상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역사적으로 구성된 근대문학 = 소설은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


소설이 다른 장르를 제패했다는 것이 근대문학의 특징이다. 소설은 세계어가 아닌 개별 네이션의 언어로 쓰였고 이 과정은 근대 국가 형성기에 조응한다. 자국의 언어로 자국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냈다. 소설의 내러티브 구조는 작가와 독자 모드에게 커다란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 상상력이 네이션의 기반이 되어 왔는데 이제 시청각적 미디어가 나오자 더는 상상할 필요가 없어졌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이런 추세를 더 가속화시켰다.


대강 이런 이야기다. 그리고 강경하게 결론짓는다.


“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에서 문학(소설)이 일찍이 가졌던 것과 같은 역할을 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중략-  (문제 해결을 위해서) 나는 더 이상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P 86  “       


동의할 수 있다. 문학이 가벼운 오락거리로 전락되어 가는 현실을 보면서 고진 문제의식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장편소설들이 떠오른다. 지금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읽더라도 그때 느꼈던 그 감흥이 되살아날까? 사실 이 책은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의 해설서적인 성격이 강하다. 다음에는 그 책을 봐야겠다. 비도 오고 있고 술 생각난다. 술 마실 상황이 아닌데도 자꾸 술 생각이 난다. 내러티브가 없는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나.....

++


Ps

역자 해제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 만약 근대문학이 종언을 맞이하고 있다면, 영화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소설과 같은 시기에 수용된 영화가 아직도 왕성한 것을 보면 소설의 종언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다. 고진의 이야기를 오독했다. 소설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과 사회에 대한 맥락에서 성찰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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