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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Aug 24. 2016

누가 만든 장애인가

거부당한 몸 : 수전 웬델 / 강진영, 김은정, 황지성 / 그린비


오래전에 사놓고 조금씩 읽다 말다 읽다 말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년 말 가기 전에 다 읽으려고 다시 집어 들었는데 재미가 별로 없어서 끝 부분은 건성건성 읽었다. 이런 책은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한꺼번에 독파해야 된다. 처음에는 좋았다. 아니 이 책은 전체적으로 참 좋은 책이다. 장애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그 경험을 사회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과정이 진지하고 성찰적이다. 결코 재미로 볼 책이 아니다. 고급 에세이를 읽은 느낌이다. 그러나 나 같은 단순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여성과 장애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서라면 필독해야 할 책이기는 하지만, 일반교양과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투자해야 할 인내력이 너무 크다. 문장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아서 어느 한 부분 쉬어 가는 곳이 없다. 저자의 삶도 진지하고 그 삶에 대한 통찰도 진지하고 통찰 결과를 표현한 글도 진지하다. 다 진지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애는 대개 의학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이것이 장애의 정치학이 우리에게 알려 준 중요한 개념입니다.  13


또 다른 고통은 인간이 가진 취약함에서 오는 것으로 나는 이 취약함을 없애 버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15


나 자신을 장애인으로 정체화하면서 나는 더 이상 혼자 힘들어한다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67


나는 질병, 상해, 신체 기능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일으키는 사회 조건들에 의해, 또한 정상성에 대한 표준을 만들고 이 표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완전한 사회 참여를 막는 미묘한 요소를 아우르는 것들에 의해 장애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79


만약 비장애인들이 잠정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미래에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회가 접근성을 충분히 갖추고, 장애인의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투자하는 것을 원할 것이다. 111


오히려 언제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환상이야말로 장애의 사회적 해체를 막는 심각한 걸림돌이라고 믿는다. 115


서양과학과 의학의 힘이 크고 과학과 의학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대다수가 믿고 있는 사회에서는, 장애인의 존재를 통해 그 전망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과학과 의학이 사람들을 병, 장애, 죽음으로부터 지켜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29


장애인은 몸과 마음에 한계와 고통을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 132


우리가 몸으로부터 소외를 줄이는 것, 몸을 더 잘 인식하는 것, 몸의 힘과 쾌락을 찬양하는 것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고통받는 몸, 고통 없이는 인식되지 않는 몸, 또한 상반되는 감정 없이 단순하게 찬양하기 힘든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 330


읽다가 언더라인 친 몇 문장들이다. 다 좋은 글이다. 어디서 인용해도 좋은 글들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장애, 비장애 나누지 말고 서로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가자. 어차피 몸은 완전하지도 않고 완전할 수도 없다. 몸이 완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학과 과학, 그리고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자. 자기 몸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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