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삼애 나눔 농장 이야기 9/18

by 김홍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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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평화롭습니다. 낮은 아직 덥지만 버틸만합니다. 바람이 적당히 불기도 합니다. 이제 다 심어놨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릴케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내가 할 일은 기도하거나 릴케의 시 [가을날]을 읊는 것, 둘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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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소서.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소서.

마지막 과실을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말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 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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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독한 겨울이 되지 않기 위해 포도주를 준비할 때입니다. 이 짧은 가을의 평화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좋은 시간입니다. 그냥 좋은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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