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열 Dec 01. 2016

세 개의 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슬픔

자이니치의 정신사 윤건차 지음 


자이니치 (재일, 在日) 윤건차의 노작이다. 제목부터가 서사적이다. 자이니치의 정신사! 정신사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맥락에서 출발한다. 정치와 경제, 사회는 물론 철학 문학 가요, 개인사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그것들을 정리하고 그것들 저류에 흐르지만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끈기 있게 추적해서 정리하고 서술한다. 


도일 (渡日)의 역사부터 시작한다. 식민지의 시작이다. 어디 가든 내 땅 내 조국이 아니다.  그저 살 수 있으면 된다. 그 이후로 강제 징병, 강제 노동, 성노예, 가난과 기근을 피해, 검속을 피하기 위해, 조국 독립을 위해, 혁명을 위해, 숱한 이유로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또 떠난다. 해방이 되면 모든 것이 정상이 될 줄 알았는데 돌아갈 고향도 없어지고 제주에선 4.3 이 일어나고 이념적 대립, 경제 혼란 등으로 다시 혼란스러워 그대로 눌러앉게 된다. 


남과 북이 갈라져 남한과 북조선이 되고 전쟁이 나고 자이니치 세계도 갈라지게 된다. 휴전 후에는 양 쪽 지역에 각각 독재자가 오랜 기간 들어서면서 피차 전향을 강요하고 강요받게 된다. 그사이 자이니치들은 일본의 법과 제도, 사회적 차별에 의해서 내국 식민지가 되고 똘레랑스가 전혀 안 통하는 남한 북조선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소모품들이 된다. 


가끔 시와 소설을 쓰면서 또는 만나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어 운동을 하고 투쟁과 활동을 하면서 그 모진 시간들을 버티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죽기도 하면서 살아왔고 버텨왔다. 그 긴 이야기다. 900 페이지의 긴 드라마가 전부 비극적 언어로 점철되어 있다. 이 비극의 역사, 어찌 해원 할 수 있을까? 자이니치에게 지은 죄가 크다. 조선 민중들에게 지은 죄가 너무 많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세 개의 나라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물질적 부족과 정신적, 심리적 악몽에 시달리면서 그저 살아야 하는 그리고 희망을 강제적으로 가져야 하는 우리의 또 다른 우리 이야기다. 그리고 더 큰 비극은 이러한 삶이 현재 진행형이고 미래 역시 비극에 가까워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이니치 윤건차는 희망을 잊지 않는다.

  

식민지 시대에 그치지 않고 분단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 특히 후일을 염려하면서 틀림없이 ‘천상의 별’이 되었을 전 활동가 선배 등 갖가지 ‘죽은 자’와 마주 대하고 그 진혼과 재생을 기원하면서 다가갈 때, 거기서 조국 통일, 그리고 자이니치의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 무언가 보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P 881  


죽은 자와 정면으로 마주 대하고 그 재생을 기원할 때, 통일과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보이겠지, 보일 것이다,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책을 끝내면서, 저자는. 


머리말 | '자이니치의 정신사'를 말한다는 것
1장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
2장 해방 이후, 점령 공간의 재일조선인
3장 한국전쟁과 재일조선인
4장 노선 전환과 문학 활동
5장 귀국 사업과 4·19 혁명, 그리고 한일조약
6장 민족을 둘러싼 갈등
7장 문학, 그리고 가족의 애증
8장 정치와 인권
9장 '자이니치로 산다'는 것
결론을 대신하여 | 자이니치의 과거·현재·미래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세계 전쟁이 임박했다고 생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