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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Mar 28. 2017

알고리즘과 객관성의 투쟁

만물의 공식. 루크 도멜 저 / 노승영 역


“한때 사랑의 핵심 요소이던 우연을 없애버리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랑을 제공하겠다는 결혼정보 웹사이트의 약속을 비판한다. 나락에 빠질 위험이 없다면 어떻게 진정 사랑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 P. 291 ”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이야기다. 동의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다. 


“알고리즘과 이와 연관된 기술적 장치는 특정한 형태의 기술 및 합리성을 구현한 것으로, 객관성이라는 약속을 중심으로 구축된 일종의 사회적 질서를 나타내는 징후라는 포괄적인 견해가 이를 입증한다. “


저자 서문에 나와 있는 이야기다. 역시 동의할 수 있다. 이제 이야기를 풀어 보자.  


철학적으로는 이성, 객관성, 합리주의가 한축을 차지하고 있고 사회, 정치적으로는 시민, 민주주의가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근대사회의 기본 이데올로기다. 보통선거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물리적 프레임이다. 가끔 문제도 있지만 대체로 잘 흘러가고 있는 편이다. 문제는 이성, 객관성, 합리주의다. 특히 객관성을 어떻게 담보할까? 중요한 문제인데 물리적 장치가 없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지적 권위에 의지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기 있는, 권위 있는 지식인의 지적 결과물을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껏 꽤 약발이 먹혀왔다. 지성, 지식인, 아카데미, 대학, 연구자, 교수 등이 그런 트렌드의 결과물들이다. 물리적 장치까지는 안돼도 사회적 프레임의 역할은 잘 수행해왔다. 


다른 하나는 여론조사와 같은 통계 수치다. 비교적 최근에 들어와 각광받고 있는 분야다. 최근 빅 데이터의 유행과 더불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객관성은 데이터에 의지 해야 한다는 것이 빅데이터의 기본 이데올로기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일종의 사회적 질서 즉, 객관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심미안 보다 알고리즘이 원본과 복사본을 더 잘 구별할 수 있고 경험 많은 중매쟁이보다 알고리즘이 더 좋은 파트너를 추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예가 수도 없이 많다. 범죄 예방에도 활용되고, 이혼 관련 서류 작성에도 도움이 된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지 없을지 시나리오만 보고 예측할 수 있단다. 


“이렇듯 만물의 공식은 다름 아닌 탈이데올로기적 존재로 표상됨으로써, 마크 피셔가 말하는 자본주의적 사실주의의 승리를 나타낸다. 만물의 공식은 이제 한 개인의 ‘엘리트적’ 단일 이론이 아니라 인간 지성의 총합에서 이끌어낸 정보와 사회를 조직화하는, 측정할 수 있고 무한히 민주적인 수단이다. p 275  “ 


물론 알고리즘은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고 부작용 또한 예상된다. 그러나 알고리즘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제남은 것은 질문과 대답이다.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만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애초에 무엇을 하도록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미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저자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는 객관성으로 포장된 만물의 공식 위에서 호흡하고 있다. 단지 안 그런 척 가끔 “쑈”를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쑈”는 필요하고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PS) 쉬운 책인데도 오랜 기간 걸쳐 읽어서 전체 맥락 이해가 쉽지 않았다. 좋은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 저자들과는 달리 철학적, 사회학적 내공이 깊다. 기회 있으면 나중에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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