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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May 19. 2017

바울이 되고 싶은 한 사내의 이야기

도올의 로마서 강해 도올 김용옥 저


도올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도올은 바울에게 세게 꽂혔을까? 다음 문장이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주고 있지 않을까. 읽어 보자.


바울은 오늘날의 서구 신학자들이 말하는 그리스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신앙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신앙을 창조한 사람이다. 그는 예수 사건을 무전제의 지평 위에서 그리스도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그러한 무전제의 지평에 도달하지 못하면 바울 그 인간의 진정한 실존적 스트러글을 이해할 수 없다. P 368


신앙을 만든 사람!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가! 종교를 만들 수는 없다. 종교는 신이거나 미친 놈만이 만들 수 있다. 신앙은 다르다. 인간의 영역이다. 스스로 신이 되지 않은/못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의욕 많은 도올도 신앙을 만들고 싶다. 당연 바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제 차근차근 이야기해보자.


자신이 속해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근사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했다. 예수는 그 시나리오의 완벽한 주연감이었다. 드라마틱하게 살다 죽었고 부활했다. 예루살렘과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그 부활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미 있다. 주연도 있고 적당한 광팬들도 있다. 이제 시나리오를 써보자. 우선 바울이 예수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 계시를 받아야 한다. 근데 예수는 지상에 없다. 환상 속에서 만나야 한다. 다마스쿠스가 좋다. 그곳에 가다가 바울은 환상 속에서 예수를 만나 컨버전된다. 컨버젼 후에 바로 필드에 나서면 보기가 안 좋다. 준비할 것도 많다. 3년 동안 수행을 하면서 죄와 구원, 종말에 대하여 세련된 이론을 완성한다. 헤브라이즘과 희랍 철학에 정통한 바울 답게 보편적 구원의 교리를 완성시킨다. 유일신론을 세련되게 정리하고 최후의 심판 사상도 포장을 다시 해 전시한다. 그리고 탁월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율법을 혁파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한다. 저작권이 바울에게 있는 그 카피는 “믿음에 의한 인의 Justification by faith!! “


시나리오는 완성됐고 이제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사내로 태어나서 폼나게 살다 죽고 싶다. 죽어도 사니까 손해는 아니다. 지중해 지역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목숨을 건 전도 여행을 한다. 여행을 하면서 자기에게는 늘 예수가 동행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예수는 바울이 되고 바울은 예수가 된다. 예수는 바울을 만나 비로소 신의 아들이 되고 바울은 그 신의 아들에 의하여 탁월한 시나리오 작가 겸 또 다른 주연 배우로 인정받게 된다. 드라마는 성공했다. 시나리오는 시공간을 초월한 스테디셀러가 되어 어린 김용옥에게까지 전달되어 도올이 감동받게 되고 바울의 삶에 대하여 책을 내게 된다. 도올도 바울처럼 살고 싶었고 그 경지에 오르고 싶었다. 아니 본인은 이미 올랐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조선의 대사상을 만들어 앞으로 천년 간 조선민족을 정신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위대한 학문체계를 정립하겠다. 아 ~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운운. P 214


도올 역시 바울처럼 치열하게 살았고 바울처럼 박학다식하다. 별로 꿀릴 게 없다. 아직도 혈기왕성하다. 조선의 대사상을 만들고 말리라. 이런 자부심이 강하게 나타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도올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 경험한 모든 것, 가끔은 촛불 시위와 같은 현실 세계에서의 경험까지 포함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읽기 편하고 그래서 산만하다. 서론이 책의 반 정도다. 그래도 좋다. 그게 도올 스타일이다. 조선의 대사상은 모르겠다. 인문학의 지평을 넓힌 것만은 분명하다.


두 가지 소감 언급한다. 오래전 읽었던 논어/중용이 오히려 더 좋았다는 생각이다. 도올은 동양철학이 더 강하다. 이제 다시 동양고전 한글 주해 작업을 가열차게 했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아래 문장이다.


음. 양의 질서를 교란하는 성교는 허용될 수 없었다. – 중략- 문명의 인위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관념적으로 자신을 그렇게 규정하는 어색한 커밍아웃이나 퇴폐적 자기 최면을 국가사회가 관용하고 조장할 필요가 없다. 남녀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p 332


사랑이 아름다운 것인가? 남녀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인가? 도올이 신앙을 (현재까지는) 만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계속 그의 건필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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