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열 Jun 16. 2020

이매뉴얼 월러스틴에 대한 소박한 예의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40대 초반에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세 권을 재미있게 읽었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할 때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박식함과 통찰력에 감탄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다가 2년 전쯤 세계체제론 4권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구매를 했다. 한 번에 쭉 읽어야 하는데 백팩에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읽다 보니 예전에 그 감동이 도무지 재연되지가 않아 결국 – 현재까지는 – 중간에 포기하고 책장에 조용히 꽂아 두었다. 월러스틴에게는 미안하지만 편하게 독서할 시간을 얻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신문에서 월러스틴의 부음을 들었고 그의 마지막 책이 출간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세계체제와 아프리카]가 그 책이다. 꼭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사서 몇 장 넘겨보니 내가 책 소개 기사를 오독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17년에 출간되었고 번역판은 2019년에 나왔지만 오래전에 쓴 글들을 모아 편집한 책이었다. 1985년부터 2009년까지 쓴 글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시의성 측면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다 읽기로 했고, 다 읽었다. 읽었으니 이제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읽은 지가 벌써 반년이나 지나서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생각이 안 난다. 독후감을 위해 중간중간 읽고 간단하게 적는다.


월러스틴은 왜 아프리카에 많은 관심이 있을까. 우선 그의 박사 논문 테마가 아프리카였다. 월러스틴은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본질적 문제로 인해 자본주의 이후 다른 체제에 대한 전망을 아프리카에서 찾고 싶어 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서쪽 세계의 사회민주주의, 동쪽의 공산주의가 본격화됐지만 자본주의의 대안으로는 부족했다. 오히려 둘이 공모하여 강화시키는 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남쪽의 민족해방운동이 대안으로 여겨졌다. 아프리카는 근대 세계체제에 지적으로 덜 포섭된 곳이다. 창조적 통찰이 가능한 곳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독립 이후 아프리카가 얼마나 변했는가, 세계 경제 체제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가, 아프리카의 정체성 정치는 무엇이며 아프리카 사상가들은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가 등에 관해 쓰고 있다.


20 ~ 30년 전에 쓴 글들이라 그리 와 닿지는 안는다. 특히 월러스틴과 다르게 아프리카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고 별 관심도 없는, 한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남의 일일 수밖에 없다. 다만 월러스틴의 문제의식만은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체제,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지적인, 실천적인 고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그의 휴머니티에는 애정과 존경을 보낸다.  굿바이 월러스틴!!


++


목차


서문

1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

1장 아프리카와 세계체제: 독립 이후 얼마나 변화했는가?
2장 세계경제 속의 남부 아프리카, 1870~2000
3장 아프리카민족회의와 남아프리카: 해방운동들의 과거와 미래
4장 아프리카에 어떤 희망? 세계에 어떤 희망?

2부 정체성 정치의 등장: 세계체제를 통해서 본 아프리카의 딜레마들

5장 민족성의 구성: 인종주의, 민족주의, 종족성
6장 발전주의와 세계화 다음은 무엇인가?
7장 집단 이름 붙이기: 범주화와 정체성의 정치
8장 근대 세계체제에서 이슬람의 정치적 구성

3부 아프리카 사상가들의 시각

9장 아프리카는 무엇인가?: 인식론에 대한 논평
10장 아프리카 연구: 아프리카 학자들의 진화하는 역할
11장 배즐 데이빗슨의 아프리카 오디세이
12장 월터 로드니: 역사적 세력들의 대변인으로서의 역사가
13장 세계체제 분석가 올리버 콕스
14장 21세기에 파농 읽기


매거진의 이전글 질서가 답답해 질 때 다시 읽고 싶은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