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박래군 지음
팽목항에 가기도 전에, 그곳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이미 슬픔에 젖는다. 금남로에 가기도 전에, 광주만 생각해도 이미 가슴이 먹먹해진다. 샛노란 유채꽃을 볼 때마다, 오름에 숨어 하루하루를 버티다 스러져간 섬사람들의 절망을 기억한다. 오늘처럼 비 오는 퇴근길, 서대문 형무소를 지날 때는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한하운의 그 서러운 노랫소리가 아직도 소록도에 남아 시간을 넘어 나에게 까지 들려온다.
공간, 아픔을 간직한 그 장소들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공간을 시간을 타고 시간과 함께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 때로 아픔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끊어지진 않는다. 시간을 넘어 다시 조용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아픔을 이야기한다. 공간은 이야기하고 사람들은 듣는다. 아픔을 듣는다. 듣고 기억한다.
공간과 공명하는 것, 공간을 기억하고 그 공간으로 들어가 공간이 되는 것, 아픔과 하나 되고 공간과 연대해 결국 그 공간을 해방시키는 것, 공간의 마지막 희망, 공간의 해방.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너무 오랫동안 그리고 아직도 많은 공간이 닫혀 있고 그저 막막하게 절망적으로 우리 밖에서 맴돌고 있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두드리는 양손은 그저 무력해 보인다. 온몸으로 저항하면서 온 인생으로 저항하면서 열려고 했던 공간들이 아직도 많이 닫힌 현실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 순간 다시 노래가 들려온다 아픔의 공간에서 해원을 갈구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잊고 있었던 그러나 분명 그 소리다. 그 소리가 맞다. 다시 공간을 기억한다. 공간의 소리를 듣는다. 세월호 어린 학생들의 그 숨 막히는 고통을 듣고, 광주도청의 마지막 밤, 열사들의 분노와 절망을 듣는다. 지하 고문실에서 들려오는 그 처참한 고통을 듣는다. 더 이상 잠들 수 없다. 기억하고 연대하자. 우선 공간의 목소리를 다시 듣자.
공간들이 너무 외로울 때는 사람의 영혼 안에 자리를 잡는다. 공간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 과거와 미래가 샤먼 안에서 하나가 되듯이 공간이 사람이 된다. 아니 되었다. 이제 하나하나 공간의 이야기를 대언한다. 대신 노래하고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슬프고 읽으면서 희망이 생긴다. 저자와 공간이 하나라는 것, 기억과 연대가 같다는 것, 그래서 공간 슬픔 기억이 저자를 통해 이어진 다는 것, 그런 이야기 책이다.
그런 사람이 쓴 아픈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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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역사의 현장에서 사람을 생각하다
학살과 해원의 섬
제주 4·3 현장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전쟁기념관
외딴섬에 살았던 사람들
소록도
처벌받지 않는 자들의 나라
광주 5·18 현장 (1)
모두가 우리였던 그날
광주 5·18 현장 (2)
좁은 창, 작은 방, 비밀 계단
남산 안기부 터와 남영동 대공분실
감옥에서도 지워진 얼굴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봄을 찾아가는 세 갈래 길
마석 모란공원
다르게 흐르는 시간들
세월호 참사 현장
후기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