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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Nov 23. 2020

성경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석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 존 도미닉 크로산 


원래 제목은 "How to Read the Bible and Still Be a Christian"이다. 두 문장이 접속사 and로 연결됐지만 내용상 1. "기독교인으로 남기 위해서는 또는 기독교인이기 위해서는 ",  2.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신학적 질문과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라서  읽고 나면 성경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그에 기초한 의식 있는 믿음이 생긴다. 저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늘 선한 의지를 베풀려고 하는 절대자의 음성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또 영원토록 우주에 충만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어 한다. 


문제의식은 이렇다. "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폭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성경에는 비폭력적 하나님,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는 하나님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보복적 정의의 하나님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불일치는 하나의 모순일까 아니면 정교하게 작성된 시나리오일까. 복음서의 나오는 예수의 비폭력과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정복자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둘은 동일한 실체일까 아니면 성서 저자가 다르듯 저자들의 고유한 철학 또는 신학일까.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리스도교 성경의 급행열차는 두 개의 평행하는 레일 위를 요란하게 달려왔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폭력이라는 레일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비폭력이라는 레일이다. p 28 


폭력과 비폭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대부분 신도들은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기가 힘들다. 성경을 어떻게 이해할까. 저자는 그 솔루션은 오히려 성경 안에서 찾아 제시하고 있다. 


그 해결책은 그리스도교 성경을 하나의 전체로 보아, 하나의 완결된 책으로, 하나의 조직된 단일체로, 하나의 통합된 총체로 보아 그리스도교 신학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p 34  


위와 같은 방법론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의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급진적인 이상을 하나님의 급진성이라 부르며, 실제로 인간의 문화 속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강제적 방식들을 문명의 정상성이라 부르겠다. p 40    


하나님의 급진성과 문명의 정상성, 이 둘의 대립과 갈등이 성경을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이다. 어느 순간 문명이 하나님 나라를 전복하려 할 때, 그런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예수 그리스도를 폭력적으로 묘사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한다. 저자는 이 문명의 이야기를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시작한다. 


수메르 문명이 시작된 때가 이스라엘에게는 창조가 시작된 때였다. 따라서 창조의 연대는 연대기적으로는 완전히 부정확한 것이지만, 은유적으로는 완전히 정확한 것이다. 어쨌건 간에, 창세기 2-3장에서는 우리의 세상이 기원전 4000년 경 하나님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동산을 만들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p 66   


문명이 만들어지면서 농부/카인이 목자/아벨을 살해하고 첫 번째 도시를 세웠으며 폭력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었다. 여기서 공동체들의 죄가 나오고 대홍수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대응 폭력이 등장한다. 보복의 정의를 행사하는 분으로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런 사례는 계속 이어진다.  하나의 사례가 바울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로마서 12장 19-20절 


이 말은 예수가 복음서에서 주장한 비폭력을 바울이 폭력적으로 전복시킨 사례다. 이러한 사례는 바울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바울이 쓰지 않은 안티 바울 편지들은 바울이 쓴 진정한 편지들의 주장을 전복시키고 있다. 예수가 복음서들 안에서 언어폭력을 통해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전복되는 것처럼 바울도 처음 바울에서 탈급진화, 재로마화되면서 전복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에 대한 정답은 이것이다. 성경을 단지 하나의 책으로 앍어 그 의미가 그 결말에 나온다고 예상하지 말고, 성경을 하나의 이미지로 바라보고 그 클라이맥스는 그 중아에 있다고 예상해라. 성경의 말을 읽지만, 성경을 시각적으로 그림을 그려라. p 335 


독후감이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쓰자. 다시 읽기도 힘들고 쓰기도 힘들다. 내 결론은 이렇다.  성경은  하나님의 급진성을 반역하려는 문명의 정상성에 대한 하나님 방식의 해결방안을 기록한 책이며 그 하나님의 속성은 정의와 사랑이며 하나님/예수님의 급진성이 왕들에 의해, 제자들에 의해 가짜 바울에 의해 지속적으로 거부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분배의 정의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오셨고 이 것이 최종 결론이다.  


++


목차


제1부 도전

1장. 성경의 결말: 야만적인 하나님에 대한 찬양? __ 9

2장. 성경의 중심: 의미는 중간에 있는가? __ 35


제2부 문명

3장. 양심 __ 63

4장. 폭력 __ 87


제3부 계약

5장. 창조와 계약 __ 109

6장. 축복과 저주 __ 129

7장. 예언과 기도 __ 145

8장. 지혜와 하나님 나라 __ 169


제4부 공동체

9장. 이스라엘과 로마의 도전 __ 197

10장. 예수와 하나님의 급진성 __ 215

11장. 그리스도와 문명의 정상성 __ 237

12장. 로마와 카이사르의 도전 __ 257

13장. 바울과 그리스도의 급진성 __ 279

14장. 바울과 제국의 정상성 __ 301


에필로그: 우리의 밤의 그림자를 뛰어넘기 위해 __ 323


옮긴이의 말 __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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