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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May 21. 2021

변호사협회까지 상륙한 철벽 기득권 장벽

김홍열의 디지털콘서트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실용화 과정을 거쳐 산업에 적용되기 시작하면 기존 업계와 마찰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이 대표적 사례다. 이 운동의 주도 세력은 실업의 원인을 산업혁명과 기계의 도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섬유 기계를 파괴하면서 시작된 운동은 지역적 폭동으로 비화되었지만 영국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수그러들었다. 기계로 인해 얻게 된 생산성 향상을 정부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러다이트 운동가들이 요구했던 사항들은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정책적, 제도적으로 수용되었지만 기계의 발전은 러다이트 운동과 관계없이 계속 고도화되었고 그에 따라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는 더 줄어들게 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급속도로 전개되면서 디지털 러다이트 역시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사무실, 시설, 공장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노동 유연화도 확산되어 기술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많았다. 그 우려는 일차적으로 단순 반복되는 업종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보이는 패스트푸드 매장 내 계산용 키오스크가 얼마나 많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대신했는지 우리는 정확한 통계조차 갖고 있지 않다. 무인점포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 또 그만큼 많은 아르바이트와 계산원의 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 확산과 그에 따른 실직 또는 수익 감소에 대한 우려는 결코 단순 반복되는 업종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갈등의 현장에 이제 변호사협회도 참가했다. 소위 리걸테크(Legal Tech)에 대해 본격적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리걸테크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대중적 법률 서비스를 말한다. 법조문과 판결문 분석을 통한 정보 제공, 형량 예측 서비스, 법률문서 번역, 변호사 광고 등이 리걸테크의 사업 영역이다. 이 중 변호사협회가 문제 삼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리걸테크가 법적으로 변호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변호사법 34조는 변호사가 아닌 자와는 사실상 모든 종류의 법률 서비스 동업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변협에 따르면 변호사들이 리걸테크와 동업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현재 리걸테크와 동업을 하고 있는 모든 변호사는 실정법을 위반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리걸테크가 변호사법 109조를 위반했다는 변협의 주장이다. 변호사법 109조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 등을 받고 법률상담 또는 법률관계 문서 작성, 그 밖의 법률사무를 취급하거나 이러한 행위를 알선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리걸테크 기업인 로톡(Lawtalk)이 자사 앱에서 운영하고 있는 ‘형량 예측 서비스’가 일종의 법률상담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변호사가 아닌 로톡이 대가를 받아 법률 서비스를 했고 이는 분명한 변호사법 109조 위반이라는 것이 변협의 주장이다. 리걸테크가 34조와 109조를 위반했다는 변협의 주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변호사만 법률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협이 변호사의 자격을 무기 삼아 리걸테크를 공격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자들이 법조 시장을 장악하는 기형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 “법률시장 교란의 위험이 있는 불공정 수임 행위를 차단하고 공정한 수임 질서 정착”을 위해서다. 즉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법률서비스 시장에 자격증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자들이 들어와 생존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그러나 변협의 이런 주장은 리걸테크에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변호사 모두가 변협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변협과 리걸테크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과 유사한 사례를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해왔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인 직방은 공인중개사협회와 갈등을 겪고 있다. 모바일 앱을 통해 원격진료 서비스와 의약품 배송 서비스를 하는 닥터가이드의 경우 코로나19로 정부가 일시적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한 탓에 영업을 하고 있지만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가 환자를 원격으로 진료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성형 전문 앱인 강남언니 역시 객관적 근거 없는 치료 경험담 제공, 무분별한 비급여 가격 할인, 불법 의료 광고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에 이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수사기관들이 강남언니의 영업 행위에 대해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변협과 리걸테크와의 갈등은 일견 업계 사이의 이해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제도와 기술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유래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산업에 적용되기 시작하면 기존 업계와 마찰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당연히 새로운 형태의 사업자가 나타난다. 기존 사업자와 새 사업자는 질 좋은 서비스와 생산성 향상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 만들어진 법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규정하면 그 피해는 사회 전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타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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