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열 Jun 05. 2021

목적론적 역사인식의 가능성과 한계

쌀, 재난, 국가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이철승

이철승 교수의 두 번째 단행본이다. 이전 저서 [불평등의 세대,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를 재미있게 읽고 독후감까지 쓴 까닭에 두 번째 책의 출간도 반가웠다. 잘 읽었다. 읽으면서 저자의 열정에 많이 공감됐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 정도 열정 있는 사회학자를 보지 못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피와 땀이 그대로 느껴진다. 좋은 책 감사드린다. 


첫 번째 책과 이 책 제목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단어가 있다. 불평등이다. 이전 책에서는 현재 한국 사회 불평등의 원인이 586세대라고 분석을 했다. 세대론적 관점에서 586세대와 586세대의 부모 세대 그리고 586세대의 자식 세대를 한국 현대사 맥락에서 비교 분석하면서 결과적으로 586세대 때문에 현재 젊은 세대가 불평등해졌다고 주장했다. 586세대가 사회적 기회, 경제적 분배를 사실상 독점하면서 젊은 세대가 마땅히 받아야 할 배분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양보해야 한다고, 제도를 개선해서 불평등 정도를 완화하고 최종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 역시 제목에 불평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이전과 달리 한국 사회 불평등의 기원을 벼농사문화라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한국 사회 좀 더 확대하면 벼농사를 했던 동양문화권에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고 국가, 지역사회, 개인은 어떠한 긴장관계에 있었고 그런 관계가 현대 한국 사회에 떤 영향을 미처 불평등이 심화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왜 쌀,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을 불평등의 기원으로 삼았는가? 그것은 반복되는 재난에 맞서 먹거리를 유지하는 활동이, 불평등 구조가 진화하는 과정의 맨 앞에 놓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p 9


'쌀 이론'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위계와 불평등 구조 - 불평등에 대한 인식, 협업과 경쟁의 구조, 교육열 그리고 노동시장의 (비정규직과 여성에 대한) 차별 구조 - 를 파헤치려는 것이다. p 10


나는 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반도의 고대국가인 삼국시대로부터 이 '쌀/재난 프로젝트'를 소환한 것이다. p 13   


벼농사에는 기본적으로 관개시설이 있어야 한다. 가뭄에 대비하지 못하면 일 년 농사가 엉망이 된다. 관개시설을 위해서는 대규모 인력동원이 필요하다. 국가의 공권력이 필요한 이유, 국가가 성립한 이유다. 적절한 관개시설이 유지되면 국가는 조용해도 된다. 이제는 지역 공동체가 중요하다. 함께 할 일들이 많다. 특히 모내기가 대표적이다. '때'라는 것이 있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공동체에서 이단으로 찍히면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공동작업은 필수다. 그러나 결과물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된다. 여기에서 협업과 경쟁이 동시에 존재한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쌀농사 문화가 지금 우리 DNA 안에 가족 중심, 친족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정리한 벼농사 체제의 일곱 가지 유산은 다음과 같다. 


1.  재난 대비 구휼 국가

2.  공동노동 조직 -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 시스템 

3.  표준화의 힘 - 수직-수평 기술 튜닝' 시스템 

4. 서열 문화와 연공급 위주의 노동시장

5. 여성 배제의 사회구조

6. 시험을 통한 선발 및 신분 유지와 숙련의 무시

7. 땅과 자산에 대한 집착,  씨족 계보로의  상속과 사적 복지체제


6번 과거제도만 빼면 대규모 관개시설이 필요한 벼 문화 지역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제도가 도입되면서 지역에서 중앙으로의 이동이 가능해지고 권력을 통한 지역 내 영향력이 강화 또는 재구성되기 때문에 과거제도는 국가가 농촌 공동체를 포섭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 되었다.  벼농사 문화에서는 협업과 경쟁이 동시에 존재하고 한 가족/친족이 크게 이기기 위해서는 과게에 급제해야 한다. 오늘 교육열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벼 문화의 이런 특성들을 밀문화와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밀농사의 경우 마을 단위가 아닌 개별 가구별로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밀문화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개인들 간의 계약을 통한 근대사회로의 이행에 기초가 되었다. 반면 벼 문화의 집단주의적 성향은 국가의 공공성보다는 내 가족/친족의 안녕을 더 중시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연공제 사회, 사적 복지체제의 문화적 기초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벼농사 체제를 극복해야 되고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재난 대비 구휼 국가에서 보편적 사회안전망 국가로

표준화를 위한 조율에서 다양성의 조율로

벼농사 체제와 청년 세대의 충돌

동료로서의 여성

직무평가 시스템의 도입―시험에서 숙련으로

연공급 대 직무급―어느 불평등을 택할 것인가

한국형 위계 구조의 개혁―연공제를 넘어서


저자의 문제의식과 그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제안된 솔루션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나 읽는 내내 트리어의 종말론자 마르크스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현재의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지난 2천 년의 벼농사 문화를 아주 심플하게 정리했다. 오로지 벼농사 하나만으로 - 물론 중간에 과거제도가 삽입되기는 했지만 - 불평등의 문제를 설파했고 그 해결책까지 제시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계급갈등을 분석하기 위해 사적 유물론을 도입한 것 같은 느낌이다. 둘 다 목적론적 역사/사회의식에서 출발해서 역사를 거쳐 다시 현재로 돌아왔는데 이철승의 내레이션은 마르크스와 달리 무척 단순해 보인다. 짧은 내용 안에 많은 서사를 담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많이 비워있는 느낌이다. 


책을 읽고 바로 써야 하는데 읽은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다.  귀찮아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저자의 열정이 고마워 뒤늦게 소감 몇 자 기록해 둔다.    


++

 

들어가며

프롤로그
이 책의 퍼즐들 | 이 책의 주요 주장들 | 벼농사 체제의 일곱 가지 유산

1장 동아시아 국가의 기원―벼농사 체제의 출현과 재난의 정치
우리는 누구인가―쌀 이론의 수립
쌀에 갇힌 동아시아, 벼농사에 집착한 한국인
쌀과 밀의 대비
한반도 정주민의 쌀 사랑
쌀밥과 빵의 정치경제학
고대국가의 재난 정치
홍수, 물벼락의 정치
가뭄, 물 확보의 정치
고대 및 전근대 국가 최악의 재난―가뭄
조선왕조의 가뭄 대비책
복합재난―정치 변동의 촉매제
나가며―쌀, 재난, 동아시아의 국가

2장 벼농사 생산체제와 협업-관계 자본의 탄생
벼농사와 평등한 협업 시스템의 출현
벼농사의 공동노동 시스템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
벼농사 문화의 지속
벼농사 마을의 비교, 질시, 행복
협업과 불신이 공존하는 벼농사 마을의 신뢰 구조
표준화와 평준화―벼농사 마을의 보이지 않는 손
벼농사 체제의 현대로의 이식―연공에 따른 숙련 상승 가설과 표준화 가설
동아시아 마을, 협업의 장인들
나가며―오리엔탈리즘을 넘어

3장 코로나 팬데믹과 벼농사 체제
동아시아인들의 문화적 디엔에이―사회적 조율 시스템
동아시아 농촌의 성공 함수―협업-관계 자본
코로나 팬데믹의 국가별 양상
벼농사 체제와 코로나 팬데믹
밀농사의 개인주의와 벼농사의 집단주의
나가며―팬데믹과 불평등의 확대

4장 벼농사 체제와 불평등의 정치심리학―왜 한국인들은 불평등에 민감한가
벼농사 사회와 밀농사 사회의 불평등 구조
쌀 경작 사회의 불평등 기제―국가로의 접속
벼농사 체제와 과거제도는 어떻게 얽혔나
벼슬과 벼농사의 상호작용
평등화와 차별화를 향한 욕망의 공존
한반도 남단 정주민의 심리 구조―평등화와 차별화의 공존
밀 문화권과 쌀 문화권의 불평등 치유 노력
불평등 치유 노력의 역사적 기원
벼농사 체제의 유산―복지국가의 저발전
현대 한국인의 복지 태도―부동산과 복지국가
나가며―국가를 통한 불평등의 생산

5장 연공제와 공정성의 위기
청년 실업과 노동시장 이중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제도(연공)-주체(세대)-구조(인구)의 착종
연공 문화의 제도화―연공제
세대 네트워크와 한국형 패턴 교섭
인구구조의 변동에 따른 기업의 인구 구성 변화
연공-세대-인구 착종과 기업의 비용 위기
연공-세대-인구 착종과 청년 고용 위기 연공제와 노동운동
연공제와 여성
나가며―불평등, 현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6장 벼농사 체제의 극복
재난 대비 구휼 국가에서 보편적 사회안전망 국가로
표준화를 위한 조율에서 다양성의 조율로
벼농사 체제와 청년 세대의 충돌
동료로서의 여성
직무평가 시스템의 도입―시험에서 숙련으로
연공급 대 직무급―어느 불평등을 택할 것인가
한국형 위계 구조의 개혁―연공제를 넘어서

나가며
참고문헌


접어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은 없더라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