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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Sep 29. 2021

누구를 위하여 공공 의료 데이터 개방의 종을 울리나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보험업계가 신청한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의료 데이터 이용 신청이 불허로 결정됐다. 건보공단은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KB생명, 현대해상 등 5개 보험사가 요청한 건강보험 자료 제공 요청을 결국 거절했다. 건보공단은 14일 국민건강정보 자료제공심의위원회 (심의위원회)를 열고 5개 민간보험사의 건강보험자료 제공 요청 6건을 심의한 결과 미승인했다고 발표했다. 국민건강정보 자료제공심의위원회는 외부 기관에서 요청한 공공 의료 데이터 제공 여부를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공단 내․외부 전문가 14인(시민단체, 의료계, 유관 공공기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의사결정기구다.


심의위원회는 지난 7월 민간보험사들의 공공 의료 데이터 이용 요청이 접수된 이후 위원회 3회, 청문회 2회 등 여러 차례의 논의를 진행해왔다. 심의위원들은 민간보험사들이 요청한 의료 데이터의 형식과 데이터를 이용해서 연구하려는 내용이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 세 가지 원칙에 맞는지를 놓고 논의를 해왔다. 세 가지 원칙은 첫째 정보주체, 즉 의료 데이터의 소유자인 국민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지, 둘째 과학적 연구 기준에 부합하는지, 셋째 자료제공 최소화의 원칙에 적합성 여부 등이다. 결과적으로 보험사들의 연구 계획서가 이 세 가지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최종적으로 이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


세 가지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원칙이다. 어느 경우에도 민간 기업의 의료 데이터 이용이 데이터의 소유자인 국민들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이 훼손되면 개인들은 데이터의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로 전락하게 된다. 심의위원 일부는 보험사들이 요청한 여섯 건의 연구 목적이 결과적으로 계층별 위험률 산출을 통한 보험 상품 개발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예를 들어 연구 결과 특정 계층의 특정 질병으로 인해 보험금이 과다하게 지출된 것이 확인된다면 향후 측정 계층의 보험가입을 받지 않거나 또는 더 엄격한 조건을 부가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보험회사들은 취약계층, 임산부, 희귀 질환자, 고령 유병자 등 그동안 보험가입이 어려웠던 계층의 가입 및 보장 확대를 위해 공공 의료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심의위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심의위원들의 이런 입장은 세 번째 원칙 즉, 자료제공 최소화의 원칙과 연결된다. 자료제공 최소화 원칙은 의료 데이터 제공 시 개별 정보의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 데이터는 실명정보, 가명 정보, 익명 정보로 분류되어 있고 순서대로 중요하기 때문에 익명 정보로 해결 가능한 일에 가명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보험회사들은 가명 정보에 기초한 의료 데이터를 원했다. 가명 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되면 재식별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데이터 제공 이전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 보험회사들이 제출한 연구계획서를 검토한 심의위원회는 계층별 단순 질병 발생률 및 유병률 정도의 연구를 위해서는 가명 정보 대신 개인정보 재식별이 불가능한 익명화 된 집계표 형태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익명화 된 집계표 형태의 데이터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공단에서 민간보험사에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보험회사들의 자료 요청은 불허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심의위원회는 합리적 결정을 내렸다. 공공 의료 데이터 이용을 위해서는 목적과 과정 모두 합리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개인의 신체적, 유전적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의료 데이터의 경우에는 더욱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제 공은 다시 보험회사로 넘어갔다. 공공 의료 데이터 이용을 원하는 보험회사들은 자신들이 기획하고 있는 신상품이 특정 계층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또 가명 정보가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된다. 제공받은 데이터로 만들어질 상품이 국민 이익에 부합되는지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심의위원회는 의료 데이터가 필요한 곳에 제공할 수 있다는 원칙적 방향성에는 동의하고 있다. 심의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어느 경우에도 기본 원칙이 준수되어야 데이터 제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심의위원회의 이런 결정이 아니더라도 공공 데이터 이용을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필요하다. 기본 데이터가 풍부해야 빅데이터, 인공지능 관련 영역이 발달하면서 사회적 부가 증가하지만 데이터 관리 시스템은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공공 데이터를 이용해서 나온 결과가 특정 기업의 사적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데이터의 공공성은 항상 준수되어야 하고 데이터 기반의 AI 산업은 이런 신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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