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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Nov 28. 2021

참혹한 역사와 부드러운 미소

역사가 내미는 손 잡고  안재웅 목사 회고록 


역사가 내미는 손 잡고 (출처 : news1)

주말에 다른 약속 안 잡고 이 책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회고록의 제목이 왜 '역사가 내미는 손 잡고' 인지 알게 됐다. 역사는 또는 신은 가끔 어느 시기에 누군가에게 당신의 손을 내민다. 전할 메시지가 있거나 행동할 사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손을 잡은 사람,  메시지를 받은 사람, 음성을 들은 사람은 이제 자신의 운명을 신에게, 역사에게 의탁해야 한다. 앞 날은 신에게 철저하게 맡기고 신이 가리키는 대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내디뎌야 한다. 신의 온전한 뜻을 알 수 없어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걸어야 한다. 이미 그 몸안에 신이 내재되어 있다. 신이 들렸고 역사가 추동하고 있다. 


이쯤 되면 대개는 비장하다. 역사가 손 내민 시기가 박정희의 유신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포악한 시대였다. 메시지도 메신저도 찾아보기 힘든 시대였다. 체계화된 저항 조직도 적었고 시민사회의 성숙도 낮은 사회였다. 이때 저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유학을 앞둔 저자에게, 미국 유학 대신 학생기독교운동이 더 중요하다고. 당신이 꼭 필요하니 같이 일하자고 간곡히 제안했다. 저자는 그 손을 기꺼이 잡았고, 이후 저자의 삶은 한국기독교민주화 운동의 한 챕터가 되었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79년 ‘와이더블류시에이(YWCA) 위장결혼식 사건’ 등과 관련해 네 차례나 옥고를 치른 대표적인 ‘민주 투사’이다. 가장의 체포와 재판 와중에 첫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잃었고, 큰아들(준현)은 충격으로 자폐증을 얻는 등 가족들도 험한 고초를 겪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211120


이제 그의 회고록은 핏빛 가득한 통한의 흔적이거나 영웅적 무용담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아들 준현이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고록은 담담하다. 한 폭의 묵화 같다. 단어와 스토리가 정제되어 있다. 그 시대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삶이, 그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타인의 삶에 대한 수용은 주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한다.  


안재웅은 그 시대를  믿음과 미소로 버텨냈고 함께했고 극복했다. 앞장 서려하지 않았다. 조용히 미소 지으며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격려하며 함께하며 끝까지 그곳에 있었다. 시인 고은은 그의 인간 대서사시집 만인보 11 권 [안재웅] 편에서 안재웅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에게는 민청학련 사건 중형 따위 흔적이

차라리 군더더기

웃으면 

방금 천냥 빚 다 갚은 

시원한 사람 

한결같은 기독교인데

행여나 불교 같다 


고은이 잘 표현했다. 모진 세월을 살았음에도 저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신이 내민 손을 양 손으로 잡았고 수난의 길을 걸어가면서 격량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미소로, 믿음으로, 행동으로 그 모진 시절을 이겨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단지 당신이 내민 손을 잡았을 뿐이라고. 


이 책은 그렇게 산 저자의 담담한 회고록이다. 고맙고 감사하다. 당신 덕분에 우리는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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