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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Nov 30. 2021

시와 산문, 또는 문학과 일상의 하나 됨

통화중일 때가 좋았다. 황경민 시집 


오월 어느 오후, 아직 해가 지기 전 귀가하다가 동네 어귀에서 지인을 만났다. 오랜만이다. 이 친구,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가워서 막걸리 한잔 하자고 했다. 편의점 밖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면서 친구 이야기를 듣는다. 중간중간 내 이야기도 한다.  듣고 말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격려한다. 조금조금씩 마음이 풀린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우리 사이를 지나가고 밤이 조금씩 깊어간다. 


이런 느낌이다.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을 다 읽었을 때의 느낌이. 일상의 언어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삶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읽다 보면, 듣다 보면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다. 시인이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다. 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우리 안에는 시인도 포함되어 있다. 


시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과 예술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우리 주변을 에워싸면서 감동을 주고 눈물을 주고 함께 어울리게 만든다. 그래서 일상은 시가 되고 시는 다시 노래가 된다. 그렇게 함께 조금씩 나이 들어간다. 그 삶에 시가 있고 노래가 있다. 


컵라면 하나를 나눠 먹은 소녀에 둘이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오면서 환하게 웃자 문밖을 기웃거리던 꽃샘이 질겁하여 컵라면 뜨거운 국물 속으로 사라진다.  봄. 전편 


엄마손 잡고 걸으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거 같다.

손을 잡고 꼬옥,

힘을 주는 주름투성이

엄마손 잡고 걸으면    엄마손 잡고 걸으면 일부 


판잣집이 잇달아서

골목은 마당이 되고 

평상은 술상이 되고

구멍가게는 사랑방이 됐다네.  산복도로 일부 


시를 읽지 않는 세상이다. 결국 시도 없고 시인도 없다.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문학이론이나 시창작론이 아니다. 일상이고 몸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시인의 말대로 낮술이다. 낮술, 시의 시작이고 시의 모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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