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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Dec 19. 2021

n번방 방지법, 검열과 필터링 사이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디지털 성 범죄물 유통 방지를 규정한  ‘n번방 방지법’이 지난 10일부터 시행됐지만 시행 하루 만에 재개정 여론에 직면했다. 우선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재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소위  ‘n번방’은 텔레그램에 개설된 단체 채팅방을 통해 불법 음란물을 생성하고 거래 및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확인된 여성 피해자만 74명이고 이 중 16명이 미성년자로 밝혀졌다. 사건 이후 디지털 플랫폼에 의한 성범죄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여성 및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로 20대 국회 종료 전에 n번방 방지법이 만들어졌다. n번방 방지법은 전기통신사업법의 일부 개정안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전기통신사업법 22조 5 항(부가통신사업자의 불법 촬영물 등 유통방지)에서 규정하고 있다. 개정된 법에 의하면 부가통신사업을 신고한 자 및 특수유형 부가통신사업자에 해당하는 자는 자신이 운영ㆍ관리하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의 삭제ㆍ접속 차단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동법 시행령 30조 6항(불법촬영물등의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ㆍ관리적 조치 등)에서는 삭제ㆍ접속 차단 등에 관한 기술적ㆍ관리적 조치에 관한 세부사항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정하여 고시한다고 규정했고 방통위에서는 고시를 통해 세부사항을 규정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정보의 삭제ㆍ접속 차단이라는 표현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서는 “정보의 삭제ㆍ접속 차단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라고 되어 있어 “삭제ㆍ접속 차단”이 사전인지 사후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방통위 고시에는 부가통신사업자와 특수유형 부가통신사업자를  “사전조치 의무사업자”라는 용어로 규정해 정보의 사전 삭제ㆍ접속 차단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용자가 올린 동영상이나 이미지 등 정보가 정부 불법 촬영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범죄 영상에 해당하는지를 사전에 식별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부가통신사업자와 특수유형 부가통신사업자는 이용자의 동의 없이 바로 삭제ㆍ접속 차단을 할 수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22조 5 항의 재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 사전 식별이 검열이라는 것이다. 사전 검열은 헌법 18조에 명시된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와 상충된다. 헌법 21조에도 위반된다. 21조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언론ㆍ출판의 자유가 있고 언론ㆍ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n번방의 피해는 충분히 알고 있고 재발방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 방법이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통신의 자유까지 훼손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전 검열은 영장 등 법원의 엄격한 판단에 따라 제한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재개정 주장파들의 주요 요지다. 


 반면 현재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n번방 방지법의 지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전 식별이 검열이 아니라 일종의 기술적 필터링이라고 주장한다. n번방 방지법 이전에도 통신사업자들은 콘텐츠 사전 식별을 위해 자체적으로 필터링을 해왔고 일부 웹하드 사업자들도 불법 촬영물을 코드 화하고 이를 새로 올라오는 영상물과 대조해 재유포를 막는 기술을 써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 이 필터링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전 검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도 있다. 검열하기 위해서는 심사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필터링의 경우 기존 불법 영상물의 특징 값과 신규 업로드되는 영상물의 특징 값을 기술적으로 비교할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쟁점의 요지는 불법 영상물을 삭제ㆍ접속 차단하기 위해 사전에 실시하는 일련의 과정이 검열이냐 필터링이냐로 모아진다. 이제 최종 판단은 헌법재판소로 넘겨졌다.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인 사단법인 오픈넷이 ‘n번방 방지법’이 “통신 매개자(사업자)가 이용자의 모든 통신 내용과 공유하는 정보를 사전에 모니터링하게 하여 이용자의 통신의 비밀, 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최종 결정 이전까지 찬성과 반대 양 진영의 논리 싸움이 치열하겠지만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헌법재판소는 ‘n번방 방지법이 위헌이라고 결정 내릴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장성과 신속성은 우리 모두에게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앙이기도 하다. 전 세계 모든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지만 동시에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악성 바이러스로 인해 갑자기 모든 것을 잃기도 한다. n번방 사건은 사회적 참사의 대표적인 사례다. 앞으로도 이런 끔찍한 사건이 재발될 가능성은 늘 있다. 재발을 막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기술적 노력들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형사 처벌이 지금보다 강화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률 제정에는 신중해야 한다. 오랜 기간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합의 가능한 설루션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늘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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