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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Dec 24. 2021

디지털 전환과 노인들의 저항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이익을 얻는 편과 손해를 당하는 편이 확연하게 구분되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익숙한 사람들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당연히 높다. 반면 새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익에서 배제되는 차원을 떠나 상대적, 절대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정보 격차)가 그것이다. 포털 다음에서는 정보격차를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정보격차는 교육 수준, 지역, 소득 수준, 성별 따위의 차이로 정보의 접근성과 이용에 관한 불균형이 발생하여 경제 사회적 불균형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하나의 사례를 든다. 예를 들어, 청소년 집단과 60대 이상의 인터넷 사용과 그에 따른 정보 획득 정도가 다르다.

 사례에서 ‘청소년 집단과 60대 이상’을 언급한 것은 세대 간 격차가 디지털 격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모든 노령세대가 디지털 격차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노령세대가 젊은 세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많이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일어난 ‘신한은행 폐점에 따른 피해 해결을 위한 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 의 집회 사건이다. 노원구 월계동의 신한은행 지점을 이용하던 고령층 주민들이 은행지점이 통폐합되고 무인형 점포로 전환하겠다는 본사 결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대책위를 만들어 신한은행 본사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다.


 손팻말에는 ‘노인배제 주민불편’, ‘은행에 배신감을 느낀다’, ‘기계와 사람이 공존하는 은행을 원한다’등의 문구가 적혀있어 지점 폐쇄에 따른 노령세대의 불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노령세대는 그동안 디지털 격차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 그룹이었지만 집단적으로 반대한 적은 없었다. 집단적 반대가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보통신 기술이 사용자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기업들은 소비자인 노령세대를 유인하기 위해 노령세대가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들어 공급했다. 적어도 기본적인 핸드폰 사용에 있어서는 노령세대 대부분이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디지털 격차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 수용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키오스크 주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세대는 터치 스크린에 익숙해서 키오스크 화면을 통한 주문 정도는 간단한 일에 불과하지만 아날로그 네이티브인 노령세대는 여러 메뉴가 있는 큰 화면에서 자신의 주문을 선택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주문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결국 포기하고 레스토랑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레스토랑과 극장의 경우 노령세대를 위한 도우미가 상존하고 있어 주문 자체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월계동 대책위의 조직적 시위는 디지털 격차로 인한 피해가 수용 가능한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이 기존 지점을 통폐합하고 그 자리에 만들기로 한 무인형 점포인 디지털 라운지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가상직원이 업무를 안내하고, 화상상담창구와 입출금 등을 위한 키오스크가 있다. 이 디지털 라운지에서 노인들은 화면을 보고 가상인간과 소통을 하면서 금융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보도에 의하면 디지털 라운지에는 디지털 기기 사용을 돕는 안내 직원도 상주한다고 하지만 노인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안내직원이 언제까지 상주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기존 창구 직원과는 그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금융업무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키오스크 주문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음식 주문은 실수를 해도 그 피해가 수용할 수 있는 정도에서 끝나지만 잘못된 금융거래는 회복하기 힘든 큰 피해를 남길 수 있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가상직원과 대화를 하다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 책임은 온전히 고객이 부담해야 한다. 세팅된 알고리즘에 의한 반응하는 가상직원은 기존 창구 직원처럼 고객의 개인적 상황을 알 수도 없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이해가 안 되면 몇 번이고 설명해주는 창구직원과는 분명 다르다. 대책위의 한 노인이 “통장 비밀번호도 다 못 외우는데, 돈과 관련된 업무를 디지털로 처리하다 실수하기는 더 쉬울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프라인 은행 지점의 폐쇄 또는 통폐합은 비단 신한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1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이 폐쇄한 점포(지점·출장소)는 총 203개로 나타났다. 핀테크 혁신과 디지털 뱅킹화.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이런 경향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안이다. 노령세대가 디지털 금융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시간이 필요하다. 솔루션도 더 노인 친화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인들이 수용 가능한 상태까지 기다려야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하지 말고 노인들도 함께 살 수 있는 디지털 전환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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