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열 Jun 29. 2022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인기 있는 두 직종, 의사와 법조인. 둘 다 전문직이고 오랜 기간 공부와 경험이 필요한 분야다. 둘 중 의료분야는 법조분야보다 고도의 전문성이 더 요구된다. 법률 용어 또는 법률 상식은 이제 거의 매일 뉴스에 나오다 보니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안다. 그러나 의료용어는 정말 쉽지 않다. 감기 몸살에서 두통, 치통 생리통 정도 거나 좀 더 알아도 X레이나 CT 촬영 정도다.  대부분 전문용어고 몇 번 들어도 기억되지 않는다. 물론 몰라도 되는 경우가 많다. 아프지 않으면 된다. 건강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으면 된다. 문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아프면 서럽다. 자신의 몸임에도 자신이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서럽다. 검사와 수술, 치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형식적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기는 하지만 글자 그대로 형식적이다.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이 안된다. 돈이 많거나 높으신 분들이라면 그래도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지만 나 같은 서민들은 '흉악한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수술 중 이런저런 사유로 우발적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그 사고는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응급실이라면 더 긴장된다. 아니 긴장이 아니라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일 수도 있다. 환자도 보호자도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최후의 심판 날 마지막 선고처럼 경청하고 순응해야 한다. 이성적 존재라고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저 파리같이 가벼운 생명체에 불과하다. 이제 의사는 절대자가 된다. 모든 것을 맡겨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절대자의 말씀에 아멘으로 답해야 한다.  성공해서 생명을 얻으면 찬미가를 부르고 실패해서 사망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응급실은 늘 성소고 제한구역이고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 응급실 이야기다. 응급실에서 일어난 '인간적인' 이야기다.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응급의학과 교수가 있고, 실력은 없으면서 꼰대 노릇만 하려는 레지던트 선배가 있고,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방기 하는 다른 과 교수들이 있다.  대부분 이미 형성된 의과대학의 위계질서를 벗어나는 발언과 행동은 극도로 자제하고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그때  "쪽팔린 게 죽기보다 싫은 응급실 레지던트"가 나타났고 그가 그 응급실에서 체험한 생존 경험을 책으로 냈다. 


근위축측삭경화증,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질환을 앓는 50대 환자가 119 구급대를 통해 응급실에 도착했다. 

-중략- 어쩔 수 없이 목 앞부분을 절개하여 기관으로 바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드는 기관절개술을 시행해서 인공호흡기를 연결할 수밖에 없었다. p 294-296 


그러나 담당인 재활의학과 교수는 기관내관을 제거하고 비침습성향입환기를 실행하다 환자가 호흡부전에 빠지게 만들었고 나중 


응급 기관절개술을 시행했으마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해 환자는 사망했다. p 305 


전문적 내용이라 잘 모르겠지만 실력 없고 권위적인 의대 교수 한 사람이 환자에게 끼칠 수 있는 해악이 어느 정도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위와 같은 사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의 부제가 "쪽팔린 게 죽기보다 싫은 어느 응급실 레지던트의 삐딱한 생존 설명서"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저자 같은 의사가 많이 나오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권위와 명예 그리고 적절한 물질적 보상을 받았으면 받은 만큼은 해야 된다. 그것이 전문가로서의 기본적 의무고 공화국 시민의 도덕적 책무다.


모두 읽어보시길 권유드린다.   


++

목차

프롤로그 - 그렇게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되었다

1년차 - 그들만의 의사 놀이
· 미니무스 교수의 아침 회진
· 징계위원회의 추억
· 수상한 전원 문의
· 응급의학과 주제에?
· 우리 임상과 문제가 아닙니다

2년차 - 곽경훈이 문제네
· 패혈증 쇼크 정복기
· 달라질 것은 없었다
· 우두머리 없는 병사의 서러움
· 진공관 교수의 등장
· 교수님 길들이기
· 병원에 아는 사람 있습니까?

3년차 - 소름 끼치는 현실주의
· 누구의 책임인가
· 전염병의 시대
· 최악의 모욕
· 데자뷰
· 자네는 왜 그렇게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나?
· 마녀 교수

4년차 - 의국장이 되었지만
· 자네가 수고 좀 하게
· 해피엔딩
· 썩은 고기의 냄새
·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소시지 굽는 방법
· 초음파 악당

에필로그 - 괴물의 뱃속에서 살아남는 방법

매거진의 이전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잠언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