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열 Jul 05. 2022

언어의 바다에서 살아남는 법, 있을까

언어의 우주에서 유쾌하게 항해하는 법


영어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자와 같은 언어천재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저자는 무려 15개 언어에 통달한 천재다. 그 천재에게는  이 우주가 언어로 구성되어 있어 늘 유쾌하게 항해하고 있다. 정박하는 곳마다 새로운 언어가 있고 그 언어를 맛있게 즐긴다. 나는 한국어항에서 출발하여 잉글리시항에 도착도 못하고 조금조금씩 가라앉고 있는데 저자는 초고속 쾌속선을 타고 우주 모든 언어 바다를 유람하고 있다. 


부러움 또는 콤플렉스는 언제 왜 생겼을까.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면 저 멀리 어딘가에 파라다이스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또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다음부터  늘 그곳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가고 싶어 잠시 승선도 했다. 그러나 조금 가다가 내리고 또 조금 가다가 내리다 보니 내항조차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항해할 시간도 투지도 없다. 그저 먼바다만 바라보면서 남이 들려주는 신세계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한다. 


그 대리만족도 나쁘지는 않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추억거리를 가져다주고 아직 의욕이 충만한 사람들에게는 별천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읽고 본격적 승선을 준비하든 또는 먼바다가 두려워 그저 머무르든 선택은 물론 본인 몫이다. 


책 구성은 그다지 짜임새가 있지 않다. 글자 그대로 수필, 그것도 가벼운 수필을 모아놓은 것들이라서 항해법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라면 실망할 수 있다. 아래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항해법과는 관련이 멀다.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 몇 줄 소개한다. 


'검정'을 뜻하는 영어 '블랙black'과 '하양'을 뜻하는 프랑스어 '블랑blac'이 뿌리가 같음을 알았을 때 느낀 경이로움은 잊기 힘들다. p 65


그렇지만 한반도 맥족이 건너간 '맥이곳'이 '멕시코'가 되었다는 따위의 낭설을 들을 때면 다서 허무한 심경이 된다. p 69


어원상 디너는 또 프랑스어 '데죄네 dejeuner (아침식사)'와 같다. 하루 중 가장 잘 먹는 밥을 뜻하다 보니 시간대가 계속 옮겨간 듯싶다. p 106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의 신화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중동의 바벨탑 신화와는 반대되는 얘기가 있다. 사람들마다 언어가 달라져 말이 통하지 않는 게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들 생각할 텐데, 오히려 그 신화에서는 언어가 하나만 남는 것이 벌이다. 다들 쓰는 언어가 같기에 무조건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해서 오히려 제대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128


교수신문은 과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해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내놓는다. 163



++


목차

제1장 어도락가語道樂家의 길

1. 어도락가로 살아간다는 것
2. 방구석 언어견문록
3. 공부가 쉽다면 거짓말이겠지만
4. 네이티브가 뭐길래
5. 검정와 하양의 뿌리는 같다
6.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7. 노르웨이의 언어, 대전의 언어
8. 사투리 공부의 즐거움
9. 말 사이 사람 사이

제2장 나의 삶, 나의 언어

1. 나의 우주 1
2. 나의 우주 2
3. 아내라는 또 다른 우주
4. 세례명과 양복
5. 노키즈존을 생각하다
6. ‘꼰대’와 ‘라떼’
7. 나의 소소한 사치
8. 아들의 말 1
9. 아들의 말 2

제3장 언어의 풍경을 바라보며

1. 번역은 미꾸라지와 같아서
2. 인공지능 시대의 번역
3. 한국어는 작은 언어가 아니다
4. 『채식주의자』의 ‘안방’을 드나들며
5. 「기생충」의 ‘짜파구리’를 맛보며
6. 닭도리탕과 겐세이 그리고 구라
7. ‘저희 봬요’
8. 맞춤법과 골동품
9. 트럼프의 말, 김정은의 말

매거진의 이전글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