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은행 오프라인 지점 폐쇄에 어어 ATM(현금자동인출기)코너 역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은행들이 오프라인 지점을 폐쇄하면서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일부 남겨 놓았던 ATM 코너마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오프라인 지점 폐쇄 당시에는 폐쇄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부 지역에서 있었지만, ATM의 경우 코너가 없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지점 폐쇄 당시 보여줬던 반대 시위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진지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들은 보인다. 지난달 22일 대구 iM뱅크(구 대구은행) 수목원디지털셀프점 ATM 코너에 붙어 있는 '철수 예정 안내문' 여백에 적혀있는 주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그것이다.
안내문에는 ATM 코너 철수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쓴 간절한 메모가 가득했다. "한 개라도 남겨주세요. 제발 있어 주세요. 연세 드신 분도 많으십니다, 주민 편의 좀 봐주세요. 학생도 애용하고 있어요” 등 여러 사람들의 희망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소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다.
대구 iM뱅크(구 대구은행) 수목원디지털셀프점 ATM 코너에 붙어 있는 '철수 예정 안내문' 여백에 시민들의 요구사항이 적혀 있다.
ATM 코너 폐쇄는 은행 오프라인 지점 폐쇄와 같은 이유로 여러 은행에서 수년 전부터 진행해 온 일들이고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ATM의 경우 오프라인 지점보다는 운영비가 덜 들지만 이용하는 고객이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유지비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은행입장에서는 폐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ATM은 2015년 4만 5135개로 최대치를 찍은 뒤 줄곧 감소세를 보인다. 해마다 줄어들기 시작해 2022년에는 3만 개 아래로 떨어졌고, 작년 말에는 2만 7861개로 집계됐다. 8년 만에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5대 시중 은행 중 2022년도에 가장 많이 폐쇄한 은행은 291개의 신한은행이지만 고령 고객 비중이 높은 농협은행도 같은 기간 287개나 감소했다.
이제 몇 년 지나면 지방 소도시 이하 지역에 설치된 ATM은 전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광역시의 경우에도 중심가 아닌 지역에서는 ATM을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인구 자체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그나마 지방에 있던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모바일 뱅킹이 보편화되면서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다. 모바일 뱅킹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은행 오프라인 지점과 ATM 코너 폐쇄를 가져왔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송금, 계좌 조회, 대출 신청 등 다양한 금융 거래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다. 모바일 뱅킹 덕에 은행은 물리적 지점과 인력을 줄여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고객은 낮은 수수료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고객의 재정 상태와 목표에 맞춘 개인화된 금융 관리 및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AI 챗봇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고객의 문의에 대응할 수도 있다.
또 위 대구 사례와 달리 모바일 뱅킹은 농촌 및 도서 지역 등 물리적 지점이 없는 지역에서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여 금융 포용성을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 신체적 장애가 있어 은행 출입이 힘든 사람들도 쉽게 금융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농어촌 지역에서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소상공인들의 경우 모바일 뱅킹이 없었다면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 언제 어디서나 은행 업무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굳이 수익이 나지 않는 ATM 코너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은행 입장에서는 ATM이 아니라도 충분한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물론 이런 시스템하에서도 ATM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는 있다. 우선 아직도 현금 사용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현금 입금을 위해서도 ATM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디지털 소외 계층은 여전히 ATM을 통해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 접속이 원활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ATM이 필요하다. 또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모바일 뱅킹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거나 휴대폰 배터리가 소진된 경우, ATM은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된 사항들이 바로 ATM을 유지해야 할 중요 이유로 보기는 힘들다. 현금 선호와 ATM 유지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고 디지털 소외 계층은 KIOSK 사례와 같이 교육을 통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시스템이 완벽하더라도 디지털 소외 계층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일부이고 계속 줄어들겠지만, 소수를 위한 배려는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배려를 시중은행에 강요해서는 안 되고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여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공중전화 부스처럼 국가나 공공기관이 운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체국에 설치되어 있는 ATM을 계속 유지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동네지원센터 등 공공기관에 설치하여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업은 시장 흐름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국가는 국민들의 권리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세심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