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분배에 관한 인류학적 사유
부제 ‘분배에 관한 인류학적 사유’가 맘에 들어 구매했다. 분배는 교환의 한 형태고 교환 (또는 교환양식)은 생산(또는 생산양식)과 어느 정도 같은 맥락에서 세계 (또는 세계사)를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주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과는 어떻게 다른 관점인지 또는 고진 독해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앞부분에 배치된 어느 교수가 쓴 해제를 읽는 순간 옅어지기 시작했고 본문 몇 페이지를 읽을 때 거의 고사되었다. 인류학적 사유는 간단한 에피소드와 함께 짧게 언급되어 있고 대부분 페이지는 일종의 당위론적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
노동과 시민권에 기반을 둔 분배방식을 승인하고 법제화해왔던 예전 방식이 더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의무에 대한 인식을 시급하게 바꿔야 할 필요가 생겼다. 37
노동자들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 즉 우리 모두가 거대한 공동 자산의 상속자로서 지분을 가지고 있다, 40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있었던 깨끗한 물 공급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처음에는 합법적 물 수혜자에게만 깨끗한 물을 공급했는데 수혜대상에서 비껴간 주민들이 더러운 물을 마셨고 그 결과 사회 전체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사회적 비용이 발생해서 결국 모두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례를 불법 이민자처럼 시민권에서 배제된 모근 사람들에게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굳이 반대할 사람들은 없다. 수많은 NGO가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학자가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당위에 그치지 말고 정교하고 세련되게 이론의 틀을 구축하고 제시해야 된다. 독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아주 일부분만 제외하고 별로 읽을만한 내용이 없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 언급됐을 때 잠시 기대했지만, 짧게 인용하는 수준에서 끝나고 말았다. 모스를 더 깊게 파고들어 확장시키거나 다른 인류학적 사례들을 인용해 논거를 풍부하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 중의 하나 (성원권의 속성)
여기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 (현존의 속성) 56
결국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 내밀어한다는 것이다.
독서의 재미가 없다. 분량이 짧아 그나마 다행이다. 책 끝부분에 아렌트 등 여러 학자들을 언급한 부분도 뜬금없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