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교환양식
마르크스가 다시 주요 이슈로 부각된다면, 그 공로의 대부분은 고진에게 돌아가야 한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마르크시즘의 주요 구성 부분인 교환양식 (교환양식을 통한 세계사의 이해)을 고진은 계속해서 집요하게 들춰내고 정리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하면서 마르크스를 부활시키고 있다. 실제 부활이 되어 다시 영향력을 행사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노고만 해도 충분히 평가받을만하다.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한 줄 한 줄 허투루 쓴 곳이 없다. 책 전체를 언더라인 쳐야 할 만큼 압축적이고 섬세하며 뚜렷하고 통찰력이 가득하다. 읽는 내내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 프로이트 등이 어떤 힘 (사회변화 또는 사회적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는)에 대해 언급했을 때 그 힘은 마르크스 생산양식 하부구조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상부구조에서 출현했고, 따라서 마르크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얄려지고 있을 때, 이는 마르크스를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성급한 판단이라고 고진은 말한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관념적인 힘을 단순히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념적 착오 내지 종교적 도착으로 거부하는 대신에,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유물론적으로 명확히 하려고 했다. 바꿔 말해 그는 그것을 '경제적' 차원에서 보려고 했다. 다만 그것을 '생산'이 아니라 '교환'으로 보았다. 그것은 사태를 경제적, 물질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간주되는 사태의 근원에서 말하자면 영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29
생산이 아니라 교환에서 상품의 물신성 commidity fetishism 이 나온다. 자본주의 생산시스템 하에서 생산된 상품에 귀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전 고대사회부터 상품을 교환될 때 그 상품 안에 물신이 내재되어 있고, 두 거래자는 상품에 내재되어 있는 물신을 통해 대화한다. 이 물신이 시기마다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면서 교환의 네 양식을 만들어 낸다. 고진이 말하는 네 개의 양식이다.
A : 호수 (증여와 답례)
B : 복종과 보호 (약탈과 재분배)
C : 상품교환 (화폐와 상품)
D : A의 고차원적인 회복
역사는 이 네 양식의 교차와 갈등에 의해 구성되고 해체된다.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고진은 고대사회부터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세심하고 흥미롭게 전개한다. 고진 주장에 동의하건 안하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고진이 혁명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여기까지 온 학문적 편력 과정은 정말 존경할만하다.
나중 한 번 더, 아니 여러 번 읽을 예정이다. 바이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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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1 상부구조의 관념적인 ‘힘’
2 ‘힘’에 패한 마르크스주의
3 교환양식에서 오는 ‘힘’
4 자본제 경제 속의 ‘정신’의 활동
5 교환의 ‘힘’과 페티시(물신)
6 교환의 기원
7 페티시즘과 우상숭배
8 엥겔스의 『독일농민전쟁』과 사회주의의 과학
9 교환과 ‘교통’
제1부 교환에서 오는 ‘힘’
예비적 고찰-힘이란 무엇인가?
1 낯선 사람끼리의 교환
2 자연의 원격적인 ‘힘’
3 ‘보이지 않는 손’과 진화론
4 화폐의 ‘힘’
5 정주화와 교환의 문제
6 공동체의 확장과 교환양식
제1장 교환양식A와 힘
1 증여의 힘
2 모스의 시점
3 원시적 유동민과 정주화
4 토테미즘과 교환
5 후기프로이트
6 공동체의 초자아
7 반복강박적인 ‘힘’
제2장 교환양식B와 힘
1 홉스의 계약
2 상품들의 ‘사회계약’
3 수장제사회
4 원시사회 단계와 교환양식
5 수장이 왕이 될 때
6 카리스마적 지배
7 역사의 ‘자연실험’
8 신민과 관료제
9 국가를 초래하는 ‘힘’
제3장 교환양식C와 힘
1 화폐와 국가
2 원격지 교역
3 제국의 ‘힘’
4 제국의 법
5 세계제국과 초월적인 신
6 교환양식과 신 관념
7 세계종교와 보편종교
제4장 교환양식D와 힘
1 원유동성으로의 회귀
2 보편종교적인 운동과 예언자
3 조로아스터
4 모세
5 이스라엘의 예언자
6 예수
7 소크라테스
8 중국의 제자백가
9 붓다
제2부 세계사의 구조와 ‘힘’
제1장 그리스 로마(고전고대)
1 그리스예술의 모범성과 회귀하는 ‘힘’
2 아주변인 그리스의 ‘미개성’
3 그리스의 ‘씨족사회의 민주주의’
4 기독교의 국교화와 『신의 나라神國』
5 비참한 역사과정의 마지막 도래
제2장 봉건제(게르만)
1 아시아적 또는 고대고전적 공동체와의 차이
2 게르만사회의 특성
3 게르만사회의 도시
4 수도원
5 종교개혁
3장 절대왕정과 종교개혁
1 왕과 도시(부르주아)의 결탁
2 ‘왕의 기적’
3 신민으로서의 공동성
4 근대자본주의(산업자본주의)
5 상비군과 산업노동자의 규율
6 국가의 감시
7 신도시
제3부 자본주의의 과학
제1장 경제학 비판
1 화폐 또는 자본이라는 ‘유령’
2 1848년 혁명과 황제 하의 ‘사회주의’
3 ‘물신의 현상학’으로서의 『자본론』
4 교환에서 유래하는 ‘힘’
5 마르크스와 홉스
6 주식회사
7 영국의 헤게모니
제2장 자본=네이션=국가
1 쉽게 사멸하지 않는 국가
2 칸트의 ‘평화연합’
3 자연의 ‘은밀한 계획’
4 제국주의 전쟁과 네이션
5 교환양식에서 본 자본주의
6 자본의 자기증식을 가능하게 하는 끊임없는 ‘차이화’
7 신고전파의 ‘과학’
제3장 자본주의의 종언
1 혁명운동과 마르크스주의
2 10월 혁명의 귀결
3 20세기의 세계자본주의
4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신제국주의’
5 포스트자본주의, 포스트사회주의론
6 만년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작업
7 환경위기와 ‘교통’에서의 ‘힘’
제4부 사회주의의 과학
1장 사회주의의 과학 1
1 자본주의의 과학
2 『유토피아』와 프롤레타리아 문제
3 양과 화폐
4 공동소유
5 ‘과학적 사회주의’의 종언
6 자술리치에 대한 답장
7 ‘일국’혁명
8 씨족사회에서 개인들의 자유
9 사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
제2장 사회주의의 과학 2
1 엥겔스 재고
2 1848년 혁명 좌절 후 『독일농민전쟁』
3 1525년의 ‘계급투쟁’
4 원시기독교에 관한 연구
5 공산주의를 교환양식에서 보다
제3장 사회주의의 과학 3
1 물신화와 물상화
2 카우츠키와 블로흐
3 블로흐의 ‘희망’과 키르케고르의 ‘반복’
4 벤야민의 ‘신적 폭력’
5 무의식과 미의식
6 아르카익한 사회의 “고차원적 회복”
7 교환양식D라는 문제
8 교환양식A에 의거하는 대항운동의 한계
9 위기에서 D의 도래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