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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Aug 12. 2024

AI 영화에 대한 두 가지 시각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생성형 AI로 만든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4일부터 14일까지 11일간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는 국내 최초로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이 신설되었고 총 15편이 출품됐다. 15편 중 작품상은 프랑스 레오 캐논 감독의 영화 '할머니들은 어디로 떠난 걸까?'로 결정됐다. 영화제의 신철 집행위원장은 "AI 영화를 시상한 관례가 없어 심사위원들이 오래 고민했다"고 말했고, 시상을 맡은 심사위원 스텐 크리스티앙 살루비어씨는 "AI 기술이 이제 막 (영화에)적용되기 시작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수상작들은 높은 수준의 프로그래밍과 기술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왼쪽부터) 심사위원 신철 집행위원장, 시상자 장해영 재정문화위원장, 정지영 조직위원장,배준원 감독, 심사위원 페르디 알리치·스텐 크리스티앙 살루비어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다양한 장르 영화들에 플랫폼을 제공하는 BIFAN이 국내 최초로 AI영화 국제경쟁부문을 신설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곳에서 AI 필름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한국의 권한슬 감독은 올 1월 아랍에미리트 최대 도시 두바이에서 열린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One More Pumpkin>으로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영화제에 출품된 500여 편 가운데 최종 선정된 것이다. 권 감독은 생성형 AI를 이용해 단 5일 만에 ‘원 모어 펌킨’를 완성했다. 영화의 모든 장면과 음성은 실사 촬영과 CG 보정이 없는 순수 생성형 AI로 제작되었다.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생성형 AI가 영화의 미래를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영화제작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관객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19일 런던 소호의 프린스 찰스 시네마(The Prince Charles Cinema)에서 상영 예정이던 '마지막 시나리오 작가(The Last Screenwriter)'의 비공개 상영이 취소되었다. 챗GPT가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는 'AI가 쓴 세계 최초의 장편 영화'로 마케팅되고 있었는데 상영 전 많은 고객의 반발이 있어 주최 측이 결국 상영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원 모어 펌킨〉 스틸컷


스위스 출신 피터 루이지 감독이 연출한 '마지막 시나리오 작가'의 경우 AI가 맡은 역할은 시나리오 작가라서 권한슬 감독이 기획한 ‘원 모어 펌킨’에서 AI가 담당한 제작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볼 수 있지만, 보수적인 잉글랜드 관객들은 이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반발의 이유는 AI로 인해 직업을 잃게 된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한 동정과 예술의 한 분야인 영화에 인간이 아닌 AI가 쓴 시나리오를 도입했다는 점에 대한 거부감 등이 뒤섞여 있다. 이런 부정적 의견들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많은 동조자를 얻었고 최종적으로 극장이 거부하기 힘든 압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거절 사례가 계속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새로운 기술과 그 기술을 응용한 사회적 구성물이 출현하면 이에 저항하는 상황은 계속 있어 왔다. 특히 예술 분야에 있어서는 그 저항의 강도가 더 심했다. 이는 예술은 기본적으로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감성의 산물이라서 인간 이외의 존재가 관여할 수 없다는 보수적 예술관과 깊은 관계가 있다. 기술이 예술에 관여하는 경우에도 예술세계의 확장을 위한 도구로서만 용인하는 정도에서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예술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조응하여 확장되었고, 그만큼 더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할리우드 작가조합이 2023년 8월 4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 (버뱅크[미 캘리포니아주] AFP=연합뉴스)


문제는 최근 AI의 활약이 기존 과학기술의 도구적 활용을 뛰어넘어 예술창작의 한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는 데 있다. 카메라와 영사기가 사진예술과 영상예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지만, 창작의 주체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었는데,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상을 제작하는 AI를 경험하고 나서는 AI의 창작물을 수용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생겨난 것이다. 여기에 AI가 다른 작품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 침해 가능성, AI가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 감소 등의 부정적 이유 등이 결합되어 사회적 반대 여론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부정적 여론 끝에는 AI 창작과 인간 창작의 차별성이 분명 존재한다는 믿음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AI 창작은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에 따라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과정이라서 미학적 의미에서 창작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AI 영화가 확산된다면 영화의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이런 우려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아 보인다. 어느 경우에도 AI가 스스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없다. 미학적 충동과 상업적 욕망은 인간에게서만 나온다. AI는 인간의 창작 행위를 지원하는 도구 이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AI의 활용으로 제작비 부담에서 벗어나 누구나 영화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영상 예술의 경계가 더 확장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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