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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말해주는 팩트를 믿으세요

한국인의 기원

by 김홍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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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소위 '유사역사학'의 주장들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위대한 민족성의 한민족이 오래전에 통치했다는 광활한 제국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분들의 주장 말이다. 어느 정도의 민족주의는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신뢰할 만한 데이터나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이 끈질기게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유사역사학에 심취한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물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 책의 내용과 결론은 심플하다. 아주 오래전 - 20만 ~ 15만 년 전 - 사하라 사막 아래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있었고 이브들의 자손들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자손 중 하나인 호모 사피엔스는 대략 12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나와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사피엔스는 이미 유라시아에서 번성하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들을 서서히 침몰시키고 지구 위 유일한 인간류가 되었다. 이유는 아마도 사피엔스의 사회성 - 두뇌의 크기, 그로 인한 지능의 상대적 발달 - 과 협력 마인드가 주요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지구의 유일한 인간류가 된 사피엔스가 왜 지구 여기저기로 옮겨갔는가에 대한 질문에 관한 과학적 근거를 담고 있다. 답은 기후다. 기후는 지구와 태양의 상대적인 위치 변화, 지구 자전축의 변화에 의해 결정된다. 구체적으로 공전궤도의 이심률, 자전축의 기울기, 자전축의 세차 운동에 의해 빙하기, 빙기, 간빙기 등이 발생한다. 각 시기마다 지구의 평균온도가 달라지면서 살기 적합한 곳과 힘든 곳이 변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먹을 것이 많은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 계속 이동하다 보니 이 조그만 행성 곳곳에 사피엔스가 거주하게 되었다. 기후학, 지질학, 생물학, 의학의 발전이 알아낸 사실들이다.


수렵하는 사피엔스가 현재의 중국 북부, 만주, 몽골에 터를 잡은 것은 4만 년 전이다. 4만 년 전 북경 근처의 동굴에서 발굴된 티안유안(Tianyuan)인이다. 한국인 기원의 시작이다. 이들 중 3만8천 년 전 류큐제도 혹은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넘어간 사피엔스를 조모인이라 부른다. 현재 일본인 DNA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 대륙 동쪽에 있던 수렵채집민은 2만 5천 년 전 마지막 빙기가 시작되면서 기온이 내려가 한반도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다시 기후가 변하면서 한반도 인구는 줄어들고 아시아 북쪽 아무르강 유역의 인구는 늘기 시작했다. 다시 기후 변화가 8200년 전 변했고 그 결과 한반도의 인구 밀도가 많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다시 3800 ~ 3700년 전에 발생한 기후 변화는 한반도의 정주 수렵채집민 사회를 거의 소멸 직전까지 몰고 갔고 이후 기후가 다시 온화해지면서 한반도 사회는 3500년 전경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약 8200년 전 추위를 피해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 중기 청동기 저온기와 약 3200년 전 산둥, 랴오둥,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 철기 저온기에 랴오시와 랴오둥에서 남하한 점토대토기 문화 집단, 중세 저온기에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혼합하여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414


한국인 기원에 대한 과학적 결론이면서 이 책의 결말이다. 과학적 성과에 기초해 내린 합리적 결론이다. 이후 더 많은 자료 (유골 등)가 발굴 분석되면 좀 더 세밀하게 정리되겠지만, 큰 틀에서는 위 결론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지 않는다.


좋은 책을 읽었는데도 한숨만 나온다. 살면서 이렇게 가짜뉴스가 판치고 가짜뉴스에 열광하는 시기는 처음이다. 언제까지 이 미친 시절이 계속될지 모르겠다. 데이터, 팩트, 과학, 비판 등은 사라지고 그저 남은 것은 내 믿음을 보증해 주는 거짓 뉴스만 남아있다. 언제나 이 혼란이 끝날지, 끝나기는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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