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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Feb 11. 2016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 폭력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 김경만 저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 폭력 :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 김경만 저


사놓고 못 읽은 책이 여러 권 있어 가급적 신간 구매는 안 하려고 했다. 좀 바쁘기도 하고 번잡하기도 해서 책이 읽히지 않는 것도 한 이유였다. 아마 교수신문이었나, 기억은 안 나는데 무척 논쟁적으로 소개한 신간이 있어서 메모해두었다가 참지 못하고 구매해서 찬찬히 읽어 봤다.


다 읽고 나니 두 사람이 떠오른다. 이어령과 김용옥. 젊은 시절 이어령이 문단의 선배들과 한 판 붙었던 그 스토리가 생각난다. 실존주의를 둘러싼 개념 논쟁이었던 것 같은데 ‘어린’ 이어령이 불어 지식을 바탕으로 선배들의 ‘무지’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그 이후 이어령은 스타가 되어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김용옥은 강준만이 잘 표현한 것처럼, 퍽하면 하버드, 하버드 하면서 세계적 석학이라는 것을 늘 강조하고 다녔다. 둘 다 젊은 시절 지적 이론을 바탕으로 선배나 기존 세대를 정면으로 치받은 사람들이다.


어느 서울 아이가 시골학교로 전학을 왔다. 모든 게 한심해 보였다. 쉬는 시간에는 그렇다 쳐도 수업시간에도 여기저기서 떠들고 왔다 갔다 한다. 도무지 정신이 없다.


“ 재네들은 공부란 걸 모르나, 아니, 수업시간에는 집중을 해야지 저렇게 떠들어서 대학을 어떻게 가려고. 참 답답하네. 서울 학생들은 하루 네 시간만 자고 공부를 하는데 이 애들은 하루 네 시간만 공부하고 있으니 앞날이 답답하네… “


서울 아이 눈으로 보면 모든 게 답답해 보인다. 크게 떠든 애 중에 조한혜정이 있었다. 그녀가 91년도 연대 사회학과에 개설된 문화이론 강의교안과 그녀의 저서 중심으로 비판하기 시작한다.


“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 (레이먼드  윌리암스)를 이렇게 간단히 ‘바보’로 만드는 게 탈식민지적 글  읽기인가? 바보로 만들면 어떠랴. 문제는 조한혜정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p 58 “


요점은 이거다. 제대로 (서구) 이론 공부도 하지 않고 독창적 한국 이론을 만든다는 것은 순 구라다. 사회학의 시작, 그 기원 그리고 지금까지 온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갑자기 무슨 한국적 사회학 이론  수립인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별로 동의하고 싶지가 않다. 공부를 해서 다 대학 가는 것이 아니다. 떠들 수도 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볼 수도 있다. 시도를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얻는 것도 있다. 조한혜정이 학부생들에게 제대로 이론 공부를 못 시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쳐 학생들이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뜨고 비판의식이 생기면 그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닐까. 주입식의 김경만 같은 교수도 필요하겠지만 ‘포퓰리즘’ 조한혜정 같은 교수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서구의 이론 역시 수 백 년에 걸쳐 정교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에세이에 불과하다가 어느 순간 조금씩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역사만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시간도 필요하고 인내도 필요하다. 틀렸다고 하지 말고 너그럽게 기다리면  안 되나. 김경만 같은 유능한 학자는 글로벌 지식장에서 대가들과 맞짱 뜨고 시골학교 아이들은 공부에는 덜 신경 쓰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 동네 공동체 살리기 운동에 앞장 서면  안될까?  


마지막 챕터는 사족이다. 저자 나름의 필요성이 있어 삽입했겠지만, 독자들이 무슨 저자 수업의 어린 대학원생도 아니고 논문 게재 과정을 그리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내용의 중복이 너무 많다. 월간지에 원고지 200 장 정도로 한 번 정도 게재할 분량인데 책 한 권으로 묶다 보니 뒷부분으로 갈수록 지루하다.  


“상아탑에 안주하는 것이 안주가 아니라  고통”이라고 저자가 말한다. 나도  그놈의 ‘고통’ 좀 겪어 보고 싶다. 유학 가서 학위 받고 대학에 취직해서 수입 걱정 없이  그놈의 ‘고통’ 좀 한 번이라도 겪어보고 싶다.


p.s 이 책 중 유일하게 맘에 드는 것 하나. 표지모델이다. 유럽 어느 도시의 이면 도로. 건물 앞에서 팔짱 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년 사내의 눈빛. 여성지의 한 페이지 같다. 파리의 한인 화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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