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1심 법원 배심원단은 디지털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중요한 평결을 내렸다. 지난달 25일 법원은 메타와 구글(유튜브)이 청소년 중독을 유발하도록 플랫폼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플랫폼 기업이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를 넘어, 사용자, 특히 판단력이 미성숙한 청소년의 심리적 취약성을 상업적으로 악용했음을 사법적으로 확정한 사건이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메타 전 직원들의 증언은 기업이 중독 위험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을 폭로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1심 판결로 그동안 SNS 중독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법원으로 옮겨져 최종 결정을 기다리게 됐다.
이번 판결 과정에서 메타의 알고리즘이 청소년의 일상을 지배하며 심각한 심리적, 신체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추천 알고리즘은 단순히 콘텐츠를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의 행동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좋아요, 댓글, 조회수와 같은 정량적 지표는 사용자에게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며 반복적인 접속을 유도한다. 아직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는 이들은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알고리즘은 이 심리를 정교하게 포착하고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플랫폼은 단순한 소통 공간이 아니라 감정과 행동을 조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부정적 영향 중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포모(Fear Of Missing Out, FOMO 소외 불안)’ 현상이다. 포모는 자신만 흐름을 놓치고 있거나 소중한 경험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강박적 공포를 의미한다. 메타의 플랫폼은 실시간 알림과 휘발성 스토리 기능을 통해 청소년들이 잠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친구들의 화려한 일상과 실시간 반응 속에 섞이지 못할 때 느끼는 소외감은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우울을 넘어선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온다. 결국 포모는 알고리즘이 파 놓은 함정 속에서 청소년들을 끊임없이 접속 상태로 붙들어 매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족쇄가 되어, 중독의 늪으로 밀어 넣는 결정적 동인이 된다.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는 청소년의 포모 현상을 구조적으로 심화시켰다. 현대 사회에서 연결되지 않음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며, 특히 또래 집단과의 관계가 정체성 형성에 핵심인 청소년에게 과잉 연결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과거의 소외가 물리적 공간에서의 배제였다면, 네트워크 사회의 소외는 실시간 데이터 흐름으로부터의 단절을 뜻한다. 네트워크가 촘촘해질수록 연결의 가중치는 높아지며, 청소년은 이 거대한 그물망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고 타인의 반응을 확인해야 하는 연결의 노동에 투입된다. 즉, 포모는 고도화된 정보 사회가 낳은 구조적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메타는 이러한 청소년의 포모 현상을 단순히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 극대화를 위해 상업적으로 이용해 왔다. 이른바 '알고리즘 통치성(Algorithmic Governmentality)' 정책을 통해 사용자 데이터로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며 체류 시간을 극대화한다. 시스템은 청소년이 언제 불안을 느끼고 언제 더 오래 머무르는지 정확히 파악하여, 그 불안의 지점에 맞춤형 자극을 투여한다. 이는 사용자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유도 속에 이루어지는 통치 행위와 다름없다. 메타의 알고리즘은 포모라는 심리적 허기를 수익 창출의 연료로 치환하며 플랫폼의 지배력을 공고히 유지한다.
메타와 구글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포모를 통한 체류 시간 증대는 소위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며, 플랫폼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산화하며, 이 과정에서 디지털 리터러시가 취약한 청소년들은 가장 손쉬운 표적이 된다. 기업들은 이를 최적화된 서비스라 부르지만, 이는 신경 체계의 취약성을 공략하는 디지털 마약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청소년의 관심과 시간은 데이터 부산물로 추출되어 광고주에게 팔려 나가고, 이 구조 속에서 청소년의 정신적 건강은 자본의 증식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메타는 10대 계정 도입, 야간 알림 중단, 부모 관리 기능 등 다양한 보호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수익 구조와 알고리즘 설계를 수정하지 않는 한 보여주기 식 면피책에 불과하다. 중독을 유발하는 엔진은 그대로 둔 채 겉모양만 일부 수선하는 방식으로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구조적 폐해를 해결할 수 없다. 미국 법원의 이번 판결은 기업의 자율적 정화에만 기댈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이 판결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 국내 청소년 SNS 규제와 플랫폼 기업의 법적 책임 강화를 위한 실질적 논의와 입법적 조치가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 ++